1일 오전,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서울 구로구 한국철도공사 구로차량기지에서 공사 직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철도노조와 한국철도공사측은 파업 시한을 얼마 앞두지 않은 오전 4시 30분 극적으로 잠정합의에 성공했다. /뉴시스

수도권 지하철 일부와 KTX(고속철) 등 전국 열차를 운영하는 코레일(한국철도공사) 노조가 파업을 하루 앞두고 2일 새벽 임금·단체 협약에 극적으로 잠정 합의했다. 이날 오후 철도노조가 조합원 총회를 열어 잠정합의안을 인준하면 최종 합의에 이른다. 전날 서울지하철을 관리하는 서울교통공사 노조가 총파업 돌입 하루 만인 1일 새벽 임금·단체 협약에 합의하고 파업을 철회한 데 이어 철도노조도 연달아 사실상 파업을 철회한 셈이다. 이로써 민주노총이 주도하는 이번 총파업 동력이 크게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철도노조는 당초 2일 오전 9시부터 전면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었다. 앞서 철도노조는 지난 10월 26일 조합원 총투표를 벌여 조합원 61.1% 찬성률로 쟁의행위 돌입을 결정했다. 지난달 24일부터는 이른바 ‘준법투쟁(태업)’을 진행 중이었다. 철도노조는 △승진포인트제 도입을 통한 투명한 승진제 △임금 월 18만7000원 정액 인상 △법원 통상임금 지급 판결로 늘어나는 급여는 인건비에서 제외 △성과급 지급 기준 유지 △인력 감축 반대·안전 인력 충원 △철도 민영화 반대 등을 요구한 바 있다.

파업 시한을 하루 앞둔 1일 코레일 노사는 오전부터 실무진 교섭과 고용노동부 중앙노동위원회 사후조정을 병행하며 막판까지 협상을 거듭했다. 사후조정이란 노조 측이 쟁의권을 획득한 이후 파업에 돌입하기 전 노사 양측 동의하에 마지막으로 중노위에서 권고를 받아 협상을 벌이는 것이다. 진통을 거듭한 끝에 노사 양측은 2일 오전 4시 30분 잠정 합의에 이르렀다. 철도노조는 이날 오후 3시 확대쟁의대책위원회의를 소집한 후 조합원 총회를 열어 잠정합의안을 인준할 예정이다. 아직 잠정합의안에 어떤 내용이 포함됐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이날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것을 두고 노동계에서는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국민 정서가 악화되고 정부가 강경 대응하고 있는 가운데 철도 근로자마저 파업에 돌입하기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화물연대는 안전운임제 품목 확대와 영구적 시행을 요구하며 지난달 24일부터 파업을 돌입했지만, 정부는 시멘트 분야에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는 등 강경 대응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는 주유소가 보유 중인 휘발유 재고가 떨어질 기미가 보이자 유조차량에 대한 업무개시명령도 고려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철도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더라도 ‘얻을 게 별로 없다’는 의견이 확산됐다는 것이다. 서울지하철 1~8호선을 운영하는 서울교통공사 노조가 지난달 30일 파업을 시작한지 하루만에 이를 철회하고 사측과 협상 타결에 이른 것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이날 오후 퇴근 시간에 서울 시내 일부 지하철역이 큰 혼잡을 빚으면서 시민 여론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철도노조가 2일 파업을 예고한 것과 관련 줄곧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혀왔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철도 노조가) 철도산업 구조 개편에 관한 내용에 민영화 프레임을 씌운다든지, 안전 책임을 정부나 인력 탓으로 뒤집어씌우는 것, 민주노총의 전위대 역할을 하며 정치파업 선동대 역할을 하는 부분은 철저히 대응할 것”이라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국토부는 파업에 대비해 군 장병 등 대체인력을 투입하는 한편 고속버스·항공기 내륙노선 임시편 투입 등 비상수송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화물연대 파업(집단운송거부) 사태로 국가 물류 체계가 심각한 차질을 빚는 상황에서 또다른 물류 수송 축인 철도마저 파업으로 지장을 받으면 산업계는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큰 불편을 겪게 될 처지였다.

민노총은 화물연대 파업을 중심으로 지하철과 철도 파업을 이어가면서 반(反)정부 투쟁 기세를 이어갈 계획이었지만 전날 서울교통공사 노조에 이어 철도노조까지 물러서면서 사실상 고립 상태로 접어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노총은 3일 서울과 부산에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이어 6일에는 전국 각지에서 총파업을 예고한 상태다. 경찰은 “불법행위 발생 시 즉각 현장 검거할 것”이라며 엄정 대응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총파업 피해가 노동자들에게 돌아갈 수 있다”며 민노총에 파업 철회를 요구하는 한편 “정부는 법과 원칙 테두리 내 자율적 대화와 타협은 보장하되 불법 행위에는 노사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정 대응한다는 기조를 끝까지 지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잇따른 파업 철회는 노조 내·외부에서 비판과 압박이 쏟아지면서 파업을 이어갈 동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지하철공사의 경우, 파업 전후 교통공사의 사내 게시판에는 ‘정치 집단이면서 회사 때문에 파업한다고 하지 마라’ ‘도대체 누구를 위한 파업이냐’ ‘왜 정권 바뀌니 파업하느냐’는 직원들의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