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서 위태롭게… 이젠 사라질 모습 - 지난 3월 14일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 한 아파트에서 인터넷 개통 기사 박태호(가명)씨가 옥상 위에 올라가 작업하고 있다. 기존엔 인터넷 연결에 필요한 네트워크 장비인 ‘함체’가 전봇대 위나 옥상 등에 달려있는 경우가 많아 작업할 때 안전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고운호 기자

아파트, 주택 등에 고속 인터넷을 설치하는 개통 기사들이 앞으로는 전봇대나 옥상에 올라가지 않고 좀 더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2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LG유플러스는 올해 300억원을 투입, 더 안전한 개통 기사 근로 환경을 조성하기로 했다. 노후 주택가 등에서는 네트워크 장비가 전봇대나 옥상 위 등 높은 곳에 있어 개통 기사가 작업하는 데 위험이 컸다. 회사 측은 앞으로 건물 1층에 네트워크 장비를 추가 설치하는 방식으로 기사가 공중 작업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할 방침이다. 근로자가 현장에서 겪는 안전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LG유플러스가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본지는 지난 3월 18일 자 ‘12대88의 사회를 넘자’ 기획 보도에서 국내 한 통신 대기업 자회사 정규직인 11년 차 개통 기사 박태호(가명·31)씨 사연을 다뤘다. 고속 인터넷을 설치하는 그의 주된 업무는 가정에서 사용하는 디지털 기기가 네트워크에 접속되도록 건물 외부의 인터넷 선과 연결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건물 외부에 설치된 네트워크 장비에 케이블을 연결한 뒤, 케이블 다른 쪽 끝을 고객 집 창문으로 집어넣어야 한다.

그런데 구축 아파트나 연립주택에서 개통 작업을 할 때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벌어질 때가 많다. ‘함체’가 옥상이나 전봇대 위에 있기 때문이다. 함체는 각 가정의 케이블이 한곳으로 연결되는 네트워크 장비다. 요즘 신축 아파트는 대부분 함체가 지하의 별도 공간에 있지만, 노후 주택가나 오래된 아파트는 함체가 근처 전봇대 위나 옥상에 달려 있을 때가 많다. 전봇대 전화선에 연계해 인터넷 선을 연결하던 예전 시절 작업 방식 그대로인 지역도 있는 것이다. 그동안 국토 곳곳에 지중 케이블망이 보급되면서 건물 저층에 함체를 설치할 수 있는 곳이 많이 늘었지만, 비용 문제 등으로 개선 작업은 지연돼왔다.

이런 곳에선 개통 기사가 직접 전봇대 위에 올라가거나 사다리차를 올려 작업해야 한다. 비나 눈이 오고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에는 아슬아슬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개통 기사가 비 오는 날 전신주 위에서 작업을 하다 감전돼 추락하거나 케이블을 잡으려다 아래로 떨어져 숨진 사고도 있었다.

네트워크 장비 1층에 옮겨 - LG유플러스 측이 개통 기사가 공중 작업을 하지 않도록 함체(점선)를 교체해 건물 1층에 설치한 모습. /독자 제공

통신 기업들은 인터넷 개통 기사들이 하는 업무 대부분을 협력사나 자회사 등에 외주로 맡기고 있다. 기업 본사는 연구·개발(R&D)과 마케팅·영업 등을 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단순한 작업은 외주로 돌려 효율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외주화한 업무 중에는 위험하거나 노동 강도가 높은 일이 많다. 박씨가 하는 일처럼 때로 높은 곳에 올라가 케이블 연결을 하는 작업이 대표적이다.

통신 업체들도 기사들의 안전 문제에 손 놓고 있던 것은 아니다. LG유플러스는 2021년부터 개통 기사가 작업하기에 위험하거나 어렵다고 판단해 회사에 알리면 새 함체를 공중 작업이 필요 없는 곳에 추가로 달고 있다. 한 대당 평균 100만원 안팎 비용이 드는데, 현재까지 1만곳 이상에서 안전하게 함체 작업을 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LG유플러스는 한발 더 나아가 전반적인 실태 조사에 나섰다. 전봇대나 건물 고층 등에 함체가 설치돼 있어 기사들이 위험할 수 있는 지역을 미리 발굴·분류하고, 건물 저층 통신 장비 설치를 적극 확대해나갈 방침이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기사들이 현장에서 겪을 어려움을 고려해 회사가 선제적으로 개선에 나서기로 한 것”이라고 했다. 이처럼 작업 환경 개선이 이뤄진 곳에서는 개통 기사들의 위험이 줄고 근무 만족도가 올라갔다. 한 LG유플러스 개통 기사는 “비 오는 날이나 낡은 주택에서 개통 작업을 할 때는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을 때가 많았다”며 “높은 곳에 올라갈 일이 크게 줄어들어 가족들도 기뻐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