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요, 차량 창문 좀 내려 주세요.”

개천절인 3일 오전 10시쯤 서울 서대문역 5번 출구 인근 차도에서는 경찰의 차량 검문이 한창이었다. 광화문역 방면으로 향하는 차량을 멈춰 세우고, 집회를 위한 현수막 등을 가지고 있는지 차량 내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비슷한 시각 시청역 방면으로 향하는 충정로역 인근 도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이 시각 차를 몰고 광화문역 인근으로 향하던 김모(40·경기도)씨는 “독립문으로 넘어오는 도로에서는 운전자가 차에서 내려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는 것도 봤다”며 “차량 안에 태극기가 있었다고 한다”고 했다.

개천절인 3일 오전 서울 광화문 도로에 돌발적인 집회·시위 등을 차단하기 위한 경찰 버스가 줄지어 서있다. /연합뉴스

정부와 경찰이 이날 서울 시내에서 ‘드라이브 스루’ 형태로 예고된 집회에 대해서도 불법 집회로 보고 체포·면허정지 처분을 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광화문 광장 인근과 도심 곳곳에선 긴장감이 감돌고 있다. 경찰은 돌발적인 집회 및 시위를 차단하기 위해 서울 시내 진입로 90곳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경력 180개 중대 1만1000여명을 동원해 도심으로 들어오는 차량 등을 점검하고 있다.

광화문에서 서울시청으로 이어지는 세종대로와 인도에는 경찰 버스 수십여 대를 일렬로 세운 차벽이 세워졌다. 광화문광장 둘레에는 시민 진입을 막기 위해 케이블로 고정된 철제 펜스도 설치됐다.

◇광화문광장 보행자도 통제…신분증까지 확인

광장 인근 보행도 통제됐다. 이날 오전 10시쯤 시청역 출구와 시청 광장으로 진입하는 횡단보도 앞에는 얼굴을 가리는 마스크와 라텍스 장갑을 착용한 경찰들이 시청 광장 쪽으로 건너가려는 시민들을 을지로입구 쪽으로 돌려 보내고 있었다.

광화문역 7번 출구 포시즌 호텔 주변 골목길과 광장으로 이어지는 길목에는 경찰 버스가 빽빽하게 정차돼 일반인 통행을 통제했다. 광장 주변 도로에는 15~20명의 경찰이 구역마다 배치됐다. 경찰은 통행하는 시민들에게 방문 목적 등을 묻고, 신분증을 확인하기도 했다. 일부 시민에게는 경찰이 목적지까지 동행하는 방식으로 출입을 허용했다. 경찰 관계자는 “오늘 오전 7시부터 현장에 나와 통제를 시작했다”고 했다.

3일 오후 서울 종로1가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 부근에서 도심 집회를 시도하는 시위 참가자들이 경찰에 막혀 있다. /연합뉴스

◇"1인 시위도 막느냐" “광화문이 니꺼냐”…시위 시도차량 20여대 회차 조치

곳곳에서는 광화문 통제에 항의하는 일부 시민들이 경찰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오전 11시 25분쯤 광화문우체국 인근 보도에서 광장 방면으로 향하던 한 시민은 경찰이 출입을 막자 “마스크를 쓰고 시위하는 것이 왜 방역 방해냐”고 했다. 손에는 ‘광화문이 니꺼냐’고 적힌 손팻말을 들었다.

1인 시위를 하겠다는 시민과 이를 막는 경찰의 실랑이도 벌어졌다. 비슷한 시각 시청역 1번 출구 앞에서는 한 60대 남성이 “혼자 평화 시위를 하러 왔는데도 하지 못하게 한다”며 언성을 높혔다. 이 남성은 “아침에 전주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왔다”며 “1인 시위는 되지 않느냐”고 했다. 제지하던 경찰 관계자는 “한두명의 인원이 모이면 대규모 시위가 된다”고 했다.

한남대교 인근에서는 작은 태극기와 ‘4·15 총선무효’라고 쓰여진 깃발을 단 회색 차량이 드라이브 스루 집회에 참석하려다가 경찰 검문을 받은 후 철수하기도 했다. 경찰은 도로 가장자리에 차량을 세우게 한 후, 해당 차량이 시위 허가를 받지 않은 차량이라는 것을 확인한 뒤 “시위에 참여할 수 없다”고 안내했다.

경찰에 따르면, 한남대교 북단 등 서울 도심에서 이날 오전에만 20여대가 불법 시위 시도 차량으로 적발돼 회차 조치됐다. 관광버스 2대도 포함됐다.

3일 오후 서울 종로1가 종로구청 입구 사거리 부근에서 도심 집회를 시도하는 시위 참가자들을 경찰이 통제선 밖으로 밀어내고 있다. /연합뉴스

◇곳곳서 시민 불편…"집회 금지돼 통제 사실 몰라"

시민들 혼란도 이어졌다. 경찰이 이미 집회 금지를 했기 때문에, 일대가 통제되는 줄 몰랐다는 것이다. 오전 9시 50분쯤 종각역 인근의 안과를 찾은 조희정(43)씨는 진료를 마치고 광화문역사거리에서 지하철을 타기 위해 광화문역 7번 출구로 향했지만, 경찰에게 제지당했다. 조씨는 “다른 안과는 문을 닫아서 겨우 문 연 안과를 찾아 택시를 타고 왔는데, 지하철까지 통제하는 줄 몰랐다”며 “오늘 집회를 모두 금지시켰다고 해서 통행이 자유로운 줄 알았다”고 했다. 현재 광화문역 출구는 폐쇄된 상태다.

광화문역 무정차를 알지 못한 시민들이 역에서 헤매는 경우도 있었다. 광화문 교보문고를 찾으려던 조모(28)씨는 이날 오전 9시 30분쯤 5호선 종로3가역과 서대문역에서 내리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처음엔 스마트폰을 보다 광화문역을 지나친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다 “오늘 광화문역에는 정차하지 않는다”는 역 안내방송을 듣고서야 열차가 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조씨는 “열차 객실 내부에서는 ‘이번 역은 광화문역’이라는 안내 방송이 그대로 나왔기 때문에, 서지 않는 줄 몰랐다”고 했다. 지하철은 이날 오전 9시 10분쯤부터 5호선 광화문역을, 9시 30분쯤부터는 1·2호선 시청역과 3호선 경복궁역을 무정차 통과하고 있다. 교통 통제가 이뤄지면서 이곳을 지나는 버스도 예고한 노선으로 우회하고 있다.

개천절인 3일 오후 대전시 유성구 노은동 대전월드컵경기장 인근에서 보수단체 회원들이 '드라이브 스루' 차량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부 단체 ‘드라이브 스루’ 집회…10인 미만 기자회견도

경찰은 이날 드라이브 스루 집회를 포함한 신고된 모든 집회에 금지 통보를 했다. 하지만 이 중 단체 2곳은 10대 미만 차량 집회에 대한 행정소송에서 일부 인용 결정을 받아, 도심에서 차량 집회를 진행했다.

보수단체 ‘애국순찰대’ 관계자들이 모는 차량 9대는 이날 오전 경기도청을 출발해 오후 2시 10분쯤 서초구 방배동에 있는 조국 전 법무장관 자택 주변에 도착했다. 경찰은 이들이 서울 시내에 진입하기 전, 시위 차량을 세우고 번호판 등이 미리 신고된 내역과 일치하는지 여부를 확인했다. 차량 내부에서 참가자의 신분증을 확인하며, 사전에 신고된 참가자 1인만 탑승했는지도 점검했다.

이들은 차량을 세우지 않고, 자택 인근을 맴돌며 운전하는 방식으로 조 전 장관과 광진구 구의동에 있는 추미애 법무장관 자택 인근에서 차량 시위를 했다. 참가자들은 중간중간 경적을 길게 울렸다. 방송차를 비롯한 차량에는 ‘법치파괴 추미애는 사퇴하라’ ‘군기문란 사죄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팻말과 깃발이 붙었다.

일부 집회 진행자들은 “경찰이 과도하게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보수단체 ‘새로운 한국을 위한 국민운동’(새한국)은 이날 오후 2시쯤부터 강동구 5호선 굽은다리역에서 강동 공영차고지까지 차량 9대로 15.2㎞를 행진하는 차량집회를 진행했다. 이들은 당초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었지만, 법원이 이를 금지하며 성명문 배포로 대신했다.

이들은 성명문에서 “정부의 코로나 정책에 최대한 협력하기 위해 차량시위를 했다”면서도 “사전에 참석자의 전화번호, 차량번호까지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정치 보복을 각오한 사람만 차량 시위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경찰은 이들 차량 시위대 중 1명이 운행 도중 창문을 내리자, 경적을 울려 경고를 하기도 했다.

많게는 수천명 규모로 신고됐던 집회는 10인 미만 기자회견으로 대체됐다. 보수단체 ‘8·15참가자시민비대위’(8·15비대위)는 당초 1시쯤 광화문 광장 인근 교보문고 앞에서 진행하기로 했던 기자회견 장소를 광화문역 7번 출구 인근으로 바꾸고, “대통령이 경제 실정을 코로나에 전가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