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절이었던 지난 3일, 서울 광화문역 인근 ‘종로빈대떡’ 직원 하모(61)씨는 오전 10시쯤 가게로 출근했다. 추석 연휴 한복판이었지만 가뜩이나 코로나로 손님이 줄어, 가게가 생존하려면 하루라도 더 벌어야 했다. 마침 날씨도 좋았다. 영업 시작 시각 오전 11시를 앞두고 밀가루와 녹두 반죽, 오징어, 돼지고기 등을 준비했다. 재료값만 200만원어치. 가게는 평소 화창한 주말이면 하루 300만~400만원을 번다. 청계천 나들이객과 북한산 등산객, 외국인 관광객 등이 주된 손님이다.

개천절인 3일 오후 경찰이 시민들의 집회 참석을 막기 위해 서울 세종대로 일대에 경찰버스 차벽을 세웠다. / 장련성 기자

마침내 11시가 되어 가게 문을 열었다. 그러나 그로부터 세 시간 만에 장사를 접어야 했다. 경찰이 집회를 막는다며 하씨 가게를 포함한 광화문 일대를 차벽으로 둘러싸고 완전히 봉쇄했기 때문이다. 하씨는 “그날은 온 도로가 막힌 데다 30m 간격으로 사람을 붙잡고 검문을 하는 통에 이 근처 개미 새끼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면서 “사장님이 경찰들을 붙잡고 ‘제발 가게로 사람이 들어올 수 있게 통로라도 좀 열어달라’고 애원했지만 안 된다기에 오후 2시에 결국 장사를 접고 문을 닫았다”고 했다. “반죽은 그날 안 쓰면 못 쓰기 때문에 아침부터 만들어 놓았던 반죽과 재료들은 모두 내다버렸다”고 했다. 이날 매출은 5만원. 경찰관 4명이 먹고 간 빈대떡값이었다.

그날 경찰은 방역을 앞세워 광화문광장 북단 경복궁 앞부터 서울 광장 근처 덕수궁 앞까지, 경찰 버스를 총연장 4㎞에 걸쳐 줄지어 세워 인도와 도로 간 통행을 막았다. 이른바 ‘재인 산성’이었다. 경찰 인력 1만1000명을 동원해 일반 시민 진입 자체를 불허했다. 지하철도 5호선 광화문역과 1호선 시청역, 3호선 경복궁역을 무정차 통과했다.

이 같은 개천절 광화문 봉쇄에, 하씨네 가게처럼 하루치라도 더 벌어보려고 추석 연휴 중임에도 가게를 열었던 상인들은 절망했다.

하씨는 “가뜩이나 힘든데 너무한다 싶었다”고 했다. 이 빈대떡 집은 지난 8월 8명이던 직원을 3명으로 줄였다. 코로나 이후 손님이 급감한 데다 임차료, 전기료를 감당하기 어려워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한다. 30년째 같은 자리에서 장사하고 있다는 가게 사장 임모씨는 “하루 장사 망친 게 큰 대수겠냐 싶겠지만 직원들까지 자르며 겨우 버티는 우리들한테는 엄청난 타격”이라며 “한글날에도 집회를 한다는데 그날 또 길을 다 막아버리면 어쩌나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

광화문역 8번 출구 근처 ‘이모네 감자탕’을 운영하는 조미숙(55)씨는 “개천절에 9시 반쯤 나와서 점심 장사 준비하다가 사람이 너무 없어 2시쯤 문 닫고 들어갔다”면서 “재료가 그대로 남는 통에 밥이며 반찬이며 집에 그대로 싸들고 가 가족들과 함께 먹었다”고 했다. 광화문역 1번 출구 근처 ‘깡장집’을 운영하는 이모(61)씨는 “정부가 코로나 지원금 100만원씩 쥐여주기보다는, 장사로 밥벌이하는 사람들 최소한 스스로 먹고살도록 해주는 게 더 중요한 거 아니냐”고 했다.

시청역 주변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시청역 7번 출구 근처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정모(51)씨는 “개천절 당일 ‘차량이 통제돼 못 온다’며 예약을 취소한 사람들이 2팀”이라며 “그날 오전 11시부터 밤 10시까지 문을 열고 있었지만 딱 8팀밖에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비슷한 곳에서 ‘만선호프’를 운영하는 박평국(64)씨는 “한 푼이라도 벌자고 추석 연휴 내내 안 쉬고 가게 문을 열었다”면서 “그렇게 벌어도 요즘 같은 시기에 하루 매출 30만원도 안 되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임차료를 감당할 수 있다”고 했다. 박씨는 “코로나 터지고 주방 2명, 홀 5명 직원을 자르고 가족들이 직접 운영 중인데 이런 식으로 집회를 봉쇄하고 사람 통행도 막아버리니 타격이 너무 크다”고 말했다.

지하철이 무정차 운행한 경복궁역 근처 순댓국집 주인 이모(60)씨는 “코로나 때문에 그러지 않아도 매출이 10분의 1이 줄었는데 지하철역까지 막고 통제하니 개천절 장사를 완전히 망쳤다”면서 “싸우고 먹고 시끄럽게 돌아다니고 그런 순환이 있어야 돈도 돌고 장사도 되는데 지금은 그런 게 일절 없어 죽을 지경”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