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백록담이다”
지난 24일 아시아나 항공의 ‘한반도 일주 비행편’에 탑승한 승객들에게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항공기가 제주상공을 지나자 기장은 안내방송을 통해 “비행기 우측에는 우도가 있고 좌측에는 한라산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장은 또 탑승객들이 창 밖의 풍경을 잘 볼 수 있도록 비행고도를 3000여m로 낮췄다. 기내에서는 승객들이 좌측 창쪽과 우측 창쪽을 오가며 창 밖을 내다봤다. 일부 승객들은 창 측 좌석이 아닌 탑승객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면서 함께 창 밖 풍경을 관람했다. 대구에서 온 홍성민(42)씨는 “한라산을 상공에서 본 것은 처음인데다 중간 중간 기장님이 상세히 설명해줘 정말 좋았다”고 말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 사태로 해외여행길이 막힌 가운데, 국내 항공사들이 출발지와 도착지가 같은 ‘목적지 없는 비행’ 상품을 내놓았다. 아시아나 항공은 이날 비행에 하늘을 나는 호텔이라 불리며 주로 국제선을 오가는 A380 기종을 투입했다. 항공권 가격이 1인당 20만원이 넘었지만 많은 탑승객이 몰렸다. A380 항공기의 총 좌석 수는 495석이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시행으로 298석만 판매됐다. 이날 실제 탑승객 수는 250명이었다.
특히 이날 비행에는 60~70대 어르신들과 자녀를 동반한 가족들이 많았다. 대구에서 온 권명숙(64)씨는 “고향 친구 3명과 함께 대구에서 4시에 출발했다”며 “코로나바이러스로 답답한 상황에서 친구들과 특별한 경험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3대가 함께 온 가족도 있었다. 명정후(31)씨는 “아버지, 어머니 모시고 조카 처음 비행기 태워주고 싶어서 왔다”며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가족여행이 계속 미뤄졌는데 모처럼 여행 기분 내고 좋다”고 말했다. 오혁근(72)씨는 “손자와 함께 탑승했는데 비행기에서 파란하늘을 보면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답답함이 조금이라도 해소될 것 같다”고 했다.
비행경로는 인천에서 출발해 강릉, 포항, 부산, 제주 상공을 거쳐 인천공항으로 되돌아오는 코스였다. 각 지역 상공을 지날 때마다 마치 여행 가이드가 설명해주는 것처럼 기장의 안내 방송이 나왔다. 동해 상을 따라 비행하는 항공기 창밖으로 설악산, 오대산의 가을 단풍을 구경할 수 있었고, 부산과 포항의 해변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었다.
기내식도 제공됐다. 비즈니스석에는 연어스테이크와 매시드 포테이토, 일반석에는 닭 가슴살 스테이크와 토마토 파스타가 나왔다. 어린이용 간식팩도 제공됐다. 이혜린 승무원은 “'기내식이 얼마나 그리웠는지 모른다'는 한 승객의 말씀처럼 하루빨리 코로나바이러스가 종식돼 많은 승객들께 여행의 즐거움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항공업계에서는 목적지 없는 비행 상품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인한 매출 감소의 돌파구가 될 전망이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는 “항공기의 효율적 이용과 여행에 대한 갈증해소라는 점에서 항공사와 탑승객 모두 윈윈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제주항공도 23일 한반도 상공을 한 바퀴 도는 비행을 마쳤다. 에어부산은 오는 30일과 31일 ‘목적지 없는 비행’을 운영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