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평창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임효준(25)이 중국으로 귀화하면서 중국에 한국 쇼트트랙 대표팀 2중대가 꾸려졌다는 얘기가 나왔다. 중국은 내년 자국에서 개최하는 2022베이징동계올림픽을 앞두고 전력 강화를 위해 평창올림픽 때 한국 대표팀을 이끌었던 김선태(45) 감독을 2019년 사령탑으로 영입한 데 이어 작년엔 2006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한국 대표로 3관왕, 2014 러시아 소치에서 러시아 대표로 3관왕에 오른 빅토르 안(36·안현수)을 코치로 데려갔다. 감독, 코치에 이어 실전에 나설 수 있는 임효준까지 가세하면 중국 쇼트트랙 대표팀은 그야말로 ‘제2의 한국팀’이 된다. 임효준은 그간 언론 인터뷰에서 빅토르 안을 롤모델로 삼았다고 말했다. 평창올림픽 땐 김선태 감독 지도를 받았다. 임효준이 중국 귀화를 결정하는데 두 사람의 역할이 있을 수 있다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김 감독·안 코치도 기사 보고 알아”
빙상계 관계자들에 대한 본지 취재를 종합해 보면, 중국 대표팀의 김선태 감독과 빅토르 안 코치는 임효준의 중국 귀화 과정에 관여하지 않았다. 한 관계자는 “김 감독과 안 코치도 언론 보도를 보고 임효준의 중국 귀화를 알았다”며 “중국 귀화는 김 감독와 안 코치의 재량을 넘어서는 이슈로 개입할 수 없는 문제다. 임효준도 중국 귀화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김 감독와 안 코치와 연락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임효준은 2019년 6월 진천선수촌에서 실내 암벽 훈련을 하던 중 후배 바지를 내린 일로 그해 8월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자격정지 1년의 징계를 받았다. 이후 국내에서 훈련을 하지 못한 임효준은 같은 해 가을 중국에서 약 한달 간 전지훈련을 했다. 이때 “중국에서 운동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당시 임효준은 거절했다. 중국 측은 이후에도 임효준에게 접근했고, 형사 재판과 징계 문제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답답함을 느꼈던 임효준은 귀화를 선택하게 됐다.
◇대법원서 판결 뒤집히면 징계 다시 시작?
임효준이 중국 귀화를 결정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빙상계 관계자 얘기라면서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히면 징계가 다시 시작돼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다”는 내용이 많은 기사에 담겼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과 임효준 징계 재개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임효준의 자격정지 1년 징계가 중지된 것은 임효준이 2019년 11월 21일 빙상연맹을 상대로 서울동부지법에 “징계 의결 무효를 확인해 달라”는 소송을 내면서 “징계 처분 효력을 정지 해달라”는 가처분 사건을 접수했기 때문이다. 빙상연맹의 징계로 임효준에게 피해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법원이 징계 무효 여부를 판단할 때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에 일단 징계 효력을 한시적으로 정지해 달라는 취지다. 서울동부지법도 2019년 12월 13일 이를 받아들여 “징계 정도가 적합한지 재판 과정에서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면서 1심 판결까지 징계 효력을 정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임효준 측은 작년 5월 징계 무효 소송을 취하했다.
이 소송과 별개로 임효준은 2019년 12월 16일 검찰에 의해 강제추행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고, 2020년 5월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 단독 재판부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2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 항소심 재판부는 2020년 11월 27일 무죄를 선고했다. 담당 검사가 같은 해 12월 3일 상고장을 제출했고 12월 22일 대법원에 사건이 접수됐다. 대법원은 올해 2월 17일 주심 대법관 및 재판부에 배당을 끝난 다음 법리 검토에 들어갔다.
강제추행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 결과와 상관 없이 법원의 징계 효력 정지 결정은 별도의 조치로 풀 수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징계 무효 소송이 이미 취하됐다. 이 민사 소송 진행 과정에서 나온 ‘징계를 정지한다’는 법원의 결정을 취소해 달라고 법원에 신청하면 된다”고 말했다.
◇대한올림픽委 앞서 빙상연맹 이적 동의 결정할 수도
임효준이 중국 대표팀 소속으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나가려면 대한올림픽위원회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 ‘올림픽, 세계선수권 등에 국가대표로 나간 선수가 다른 국적으로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이전 국적으로 나갔던 마지막 대회 이후 최소 3년이 지나야 한다’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올림픽 헌장(41조2항) 때문이다. 임효준이 마지막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던 대회는 2019년 3월10일에 끝난 불가리아 세계선수권대회다. 이 규정대로라면 2022년 3월11일부터 중국 대표로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데, 베이징올림픽은 2022년 2월에 열려 나갈 수 없다. 다만, 중국올림픽위원획가 대한올림픽위원회에 임효준에 대한 이적 동의를 요청하고 대한올림픽위원회가 이를 받아들이면 출전은 가능하다.
대한올림픽위원회에 앞서 빙상연맹이 임효준에 대한 이적 동의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도 있다. 임효준이 내년 올림픽에 앞서 올해 10월부터 열리는 국제빙상연맹(ISU) 월드컵 쇼트트랙 대회에 나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임효준이 중국 대표팀으로 월드컵에 출전하려면 중국의 빙상 대표 기관이 대한빙상경기연맹으로부터 이적동의서를 받아야 한다. 올림픽 헌장처럼 기간 제한 규정은 없다. 이적동의서만 있으면 언제든 출전이 가능하다. 빙상연맹에 따르면 아직 중국 측에서 임효준 이적 관련 요청이 온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