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님들 나는 사기, 폭력으로 인해 죽음을 당합니다.”
지난 2월 24일 충북 제천의 한 마을회관 2층에서 숨진 채 발견된 A(67)씨가 자신의 휴대전화에 남긴 유서의 첫 줄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몸이 아픈 형을 대신해 가장 노릇을 했던 A씨가 갑작스럽게 세상과 이별을 고했다. 주변 지인들은 A씨가 갑작스럽게 세상과 이별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이상했다고 한다.
◇형편 어려웠지만, 마을 일도 도울 만큼 성실해
충북 제천에 사는 김모(65)씨는 외사촌형 A(66)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에 믿을 수 없었다고 했다. 그는 “최근 중고트럭까지 샀던 형님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으니 믿을 수 없었죠”라며 “평생 힘들게 살았어도 삶의 의지가 강했던 형님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A씨는 7남매 중 둘째로 어린 시절 아픈 형 대신 본인이 가장 노릇을 하며 동생들을 다 돌봐왔다고 한다. 일흔이 다 되도록 결혼도 하지 못하고 변변한 집 한 채 없이 마을회관 2층에 살만큼 형편은 어려웠지만, 새마을 지도자 일을 맡아 봉사하는 등 성실히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농번기에는 마을 일을 돕고, 최근에는 비석 세우는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지난 1월 농사도 짓고 일에도 쓰기 위해 ‘세렉스 사륜 트럭’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묘비 상석 일을 하는데 덤프트럭 기능도 있는 이 차량이 있으면 보수가 좀 더 낫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인터넷 중고차 사이트에 원하던 차량이 시세보다도 훨씬 싼 300만원에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A씨는 중고차 매매 딜러와 통화를 하고 2월5일 아침 곧바로 인천행 버스에 올라탔다. 하지만 어쩐일인지 그가 그토록 원하던 세렉스 트럭이 아닌 다른 1톤 트럭 한 대를 구매해 집으로 내려왔다.
◇시세보다 비싸게 강매 당한 중고차…A씨 죽음으로 몰아
지난 2월 A씨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경찰은 수사에 나섰다. 주변 사람들 모두 A씨가 세상과 갑작스럽게 이별할 이유가 없다고 경찰에게 말했다. A씨가 일을 하겠다며 트럭까지 샀기 때문이다. 현장에 남긴 종이 유서에서도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휴대전화에서는 그동안 복잡한 심경이 담겨 있었다.
A씨는 지난 2월 5일 아침 11시 버스로 인천터미널로 향했다. 마중 나온 딜러를 따라갔는데 갑자기 돌변한 그들은 그의 눈을 가리고 30∼40분을 이동해 어디론가 데리고 갔다고 한다. 그러고는 차량 매매대금으로 가져간 300만원은 누가 가져갔는지도 모르게 없어졌고, 온몸에 문신을 한 사람에게 둘러싸여 여기저기 엄청나게 사인을 했다고 한다. 그는 일숫돈을 썼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A씨는 “그들이 내 면허증과 휴대전화를 빼앗아가 무엇을 했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유서를 통해 이들을 꼭 처벌해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농사지으려고 트럭이 필요했고, 사진을 보고 갔는데 차는 없었다. 그것이 전부 사기였는 줄 몰랐다며 당시의 심정을 유서에 고스란히 담았다.
A씨 사촌 동생 김모(66)씨는 “없는 형편에 형님이 찾던 차가 그리 싸게 나왔으니 한달음에 달려갔겠지요”라며 “그런데 그게 다 사기이고, 200만원도 안 되는 썩은 차를 700만원에 가져와 마음고생이 심했던 것 같습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형님은 여기저기 지장을 찍은 것이 일수까지 쓴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며 “그놈들에게 당하고 한 달간 얼마나 힘드셨을지 마음이 아픕니다”고 말했다.
◇A씨가 쏘아 올린 사건…억울한 피해자 50명에 달해
A씨 유서 속 증거를 토대로 충북 경찰은 곧바로 수사에 나섰다. 그리고 경찰은 A씨를 죽음으로 몰고 간 이들을 모두 잡아들였다. 잡고 보니 이들은 모두 20대로, 그들에게 당한 피해자는 모두 50여명, 피해금액은 모두 6억원대 달했다.
경찰은 일당 26명을 사기 등의 혐의로 붙잡아 이중 4명을 구속했다.
이들의 범행 수법은 체계적이면서 조직적이었다.
중고자동차 강매범들은 총책 Q(24)씨를 중심으로 텔레마케터, 출동조, 허위 딜러 등 조직적으로 역할을 분담해 피해자들을 끌어들여 범행을 저질렀다. 여기에는 정식으로 등록해 영업 중인 중고차 매매상도 끼어 있었다.
이들은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3월까지 인천광역시 서구의 한 중고차 매매단지에서 전국의 50여명의 피해자에게 중고차를 시세보다 비싸게 팔아 총 6억원가량을 가로챘다.
이들은 인터넷에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의 매물을 올려놓고 이를 보고 찾아온 구매자와 계약을 체결하고는 다시 해당 차량에 하자가 있다며 계약 철회를 유도했다. 그러면서 계약 철회를 하려는 피해자들에게 “이미 차량 등록이 완료돼 철회할 수 없고, 계약을 철회하면 위약금을 내야 한다”며 “대신 다른 차량을 사면 된다”고 피해자들을 압박해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다른 차량을 강제로 판매했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구매를 거부할 경우 문신을 보여주며 위압감을 조성하거나 차량에 감금한 뒤 위협 등을 하기도 했다. 조사 결과 A씨에게 200만원짜리 차량을 700만원에 강제로 구매하도록 하는 등 많게는 2000만원짜리 차량을 4000만원에 판매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관계자는 “인터넷 사이트에 있는 저렴한 중고차는 허위·미끼 매물일 가능성이 크다”며 “중고차 구매 시 국토교통부에서 관리하는 ‘자동차 365’ 사이트 등 신뢰가 가는 중고차사이트를 이용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차량을 구매할 시 혼자 가지 말고,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경찰에 즉시 신고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