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관악구 봉천동에 사는 직장인 장진해(28)씨는 그간 ‘전동 킥보드’를 애용했다. 퇴근길 지하철 2호선 봉천역에서 내려 킥보드를 타면 언덕 위 집까지 10분도 안 돼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걸어선 20분이 걸린다. 요금은 택시 기본료보다 싼 3000원 선이다. 그런데 지난 13일부터는 전동 킥보드를 타지 않고 있다. 헬멧 착용이 의무화된 탓이다. 그는 “13일부터 헬멧 없으면 과태료 2만원을 물린다는 얘길 듣고 그냥 안 타기로 했다”며 “헬멧을 사서 출퇴근길에 챙기느니 그냥 걸어서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정부가 전동 킥보드의 헬멧 착용을 의무화하고, 위반 시 과태료 2만원을 물리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을 시행한 지난 13일 이후 시민들의 전동 킥보드 이용이 크게 줄었다. 안전을 위한 조치지만, 공용 헬멧 등 이용자를 위한 대안 없이 정부·지자체가 규제부터 꺼내 들면서 새로운 이동 수단으로 주목받던 킥보드 산업 자체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4일 킥보드 업체 14곳으로 구성된 ‘퍼스널모빌리티 산업협의회’에 따르면, 개정 도로교통법 시행 이후 국내 킥보드 업체들의 매출은 30~50%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익명을 요구한 복수의 킥보드 업체는 “출퇴근 직장인과 대학가 학생들이 주 고객인데, 헬멧 착용을 부담스러워하는 이들이 이용을 꺼리면서 매출이 절반 가까이 줄었다”고 했다. 직장인 심모(29)씨는 “킥보드는 급할 때 편하자고 타는 건데, 누가 아침에 손질한 머리 망가뜨리고 일일이 헬멧을 갖고 다니면서 타겠느냐”고 했다.
일부 업체들이 자체적으로 ‘공용 헬멧’을 비치하고 있지만 코로나 감염과 땀 등 위생 우려 때문에 실제 이용자는 많지 않다고 한다. 과거 서울시 공용 자전거 ‘따릉이’도 비슷한 전철을 밟다가 결국 헬멧 의무화 조항이 사문화됐다. 킥보드 업계는 “차라리 최고 속도를 시속 25㎞에서 10㎞로 줄일 테니 헬멧 처벌 조항을 풀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청 관계자는 “이미 입법 과정에서 논의가 끝난 것으로 이용자 안전 측면에서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라고 했다.
지난 20일에는 ‘킥보드 주·정차 위반 시, 업체에 견인료 4만원씩을 부과하는 내용’의 서울시 조례도 공포됐다. 추후에는 별도의 공간을 따로 만들어 이곳에만 주·정차가 가능하도록 규제할 계획이다. 직장인 임모(29)씨는 “킥보드를 타는 이유는 대중교통이 닿지 않는 골목이나 집 앞까지 편하게 타고 갈 수 있기 때문”이라며 “특정 구역에서만 빌리고 반납할 수 있다면 장점이 크게 떨어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