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패럴림픽은 8월 24일에 열린다. 선수들은 도쿄행 마지막 티켓을 따내기 위해,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도쿄 본선 무대에서 최고의 기량을 펼치기 위해 국내외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중이다. 대한장애인체육회 및 산하 종목 단체, 지도자들은 선수들이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 동분서주(東奔西走)하고 있다.

/대한장애인사격연맹 홈페이지 캡처

대한장애인사격연맹도 다른 종목 단체처럼 대표 선발전도 치르고 해외 대회에 선수도 파견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다른 종목 단체와 달리 여러 잡음이 들린다. 문상필 장애인사격연맹 회장이 올해 2월 임기를 시작한 이후 이사회가 보인 행보를 보면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연맹 사무국 사무실을 갑자기 서울에서 광주광역시로 옮기면서 기존 직원 모두 지난 3월에 그만뒀다. 전임 지도부 시절부터 진행됐던 국가대표 감독, 코치 채용 절차를 백지화하고, 한 달 후인 지난 4월에 지도자를 다시 뽑았다. 새로 선임된 감독은 연맹 산하 전문체육위원회가 국가대표 선수 선발을 끝낸 후 갑자기 3명을 추가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가대표 선수 선발·평가를 담당하는 전문체육위원회는 지난 5월 “새 회장 취임 이후 이사회에서 지도자 선발안을 타당하지 않은 이유로 부결하고, 지도자는 전문체육위원회의 고유 권한을 침해했다”며 위원 10명 모두 사퇴했다.

/대한장애인사격연맹 홈페이지 캡처

장애인사격연맹과 대한장애인체육회는 이와 관련해 “이사회 및 전문체육위원회 의결을 거친 일이고 국가대표 지도자·선수 선발 규정을 위반한 것이 없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본지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실이 입수한 장애인사격연맹 이사회·전문체육위원회 회의록 등을 바탕으로 의사 결정 과정을 되짚어봤다.

◇사무실 서울→광주 이전…기존 직원 모두 그만둬

장애인사격연맹은 지난 3월 19일 긴급 직원 채용 공고를 냈다. 채용 분야는 사무국장, 중간관리자, 일반 직원(이상 정규직), 국제전문인력(계약직) 등 사무국 전 직원이었다. 국제전문인력의 경우 지난 1월에 1명을 고용했는데, 2달 만에 다시 뽑겠다고 한 것이다. 사무국장 등 정규직 3명은 곧바로 새 사람을 뽑아 4월1일부터 업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국제전문인력은 4월 9일에 채용 재공고를 낼 정도로 다시 뽑는데 시간이 걸렸다. 채용 공고안을 보면 국제전문인력은 국제장애인스포츠 기구와 소통하고, 각종 국제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을 지원하는 업무를 한다. 8월에 열리는 도쿄 패럴림픽을 4개월 앞두고 벌어진 일이다. 선수들은 지난 5월 패럴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을 치렀고, 18일 현재 세계장애인사격월드컵(페루 리마)에 출전 중이다.

장애인사격연맹이 사무국 직원을 부랴부랴 뽑은 것은 기존 직원들이 모두 그만뒀기 때문이다. 이들은 갑자기 사무실이 이전하자 직장을 그만뒀다. 올해 2월 임기를 시작한 문상필 장애인사격연맹 회장은 서울 송파구에 있던 연맹 사무실을 광주광역시로 옮기자고 했다. 광주광역시 재선 시의원 출신인 문 회장은 광주광역시에 산다. 문 회장이 작년 11월 연맹 회장에 입후보하며 발표한 6개 분야 18개 공약에도 사무실 이전 얘기는 없었다.

3월 16일 줌 화상회의로 열린 장애인사격연맹 3차 이사회 회의록을 보면, 문 회장은 “제가 광주에 살기 때문에 (사무국 사무실을) 광주로 옮겼다고 생각하지 말라”며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서울에 있던 기존 사무실 환경이 열악한데다 장애인사격연맹이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시기이고, 요즘 상당수의 사무실이 지방으로 내려가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현재 (서울) 송파에서 근무하는 직원 모두가 광주에서 근무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전 직원이 퇴사하면 (대표) 선발전, 합숙훈련, 패럴림픽 파견 등 중대한 업무들에 공백이 생겼을 때 위험을 최소화할 방안이 없다”, “사무실을 당장 옮겨야 하는 매우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좀 더 고민을 해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결국 이사회는 사무실을 광주로 옮기기로 했다.

문 회장은 본지 통화에서 “연맹 회장과 사무국이 떨어져 있으면 업무가 잘되지 않는다. 사무실을 광주로 옮긴 덕분에 지난 5월 전남 나주 국제사격장에서 2021 회장기 및 종별선수권(1·2차 국가대표 선발전을 겸해 열림)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를 수 있었다. 300여명이 참가했는데 코로나 확진 없이 안전하게 대회를 끝냈다”며 “페루 리마에서 열리는 국제 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내는 등 사무실 이전과 새 직원 채용에 따른 업무 공백은 없다”고 했다. 그는 또 “서울 사무국에서 일하던 직원에게 사무실 이전과 관련해 사전에 동의를 구했고, 가능하면 고용을 유지하려고 했는데 여러 사정상 잘 안 됐다. 지방 균형 발전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사무실을 옮겼다”고 말했다.

대한장애인사격연맹이 지난 5월 3일 각 지역 연맹에 올해 국가대표 선수 선발을 위한 전문체육위원회의 계획을 알리는 공문. 맨 아래쪽에 보면 연맹 사무실의 주소는 광주광역시로 돼 있지만, 전화번호는 서울 송파구에 있던 이전 사무실 것이다. 갑작스런 사무실 이전과 직원 교체에 따른 혼란을 엿볼 수 있는 공문으로 보인다./대한장애인사격연맹 홈페이지

◇결격 사유 없어도 ‘전임 지도부 채용 진행’ 지도자 선발 백지화

장애인사격연맹은 작년 10월 15일 국가 대표팀 지도자 채용 공고를 냈다. 연맹 산하 전문체육위원회에서 1차 서류 심사에서 합격한 12명을 상대로 면접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코로나 거리두기 단계가 높아지면서 면접이 연기됐다. 그런데 장애인사격연맹의 상급 기관인 대한장애인체육회가 올해 2월 19일 국가대표 지도자 근로 조건을 수당제에서 월급제로 변경했다. 그러자 장애인사격연맹 사무국은 “처음 공고 당시 수당제였는데 채용을 계속 진행해도 괜찮으냐”며 변호사에게 법률 자문을 구했다. 변호사는 “채용 공고 당시 근로조건이 변경될 수 있다고 밝혔고, 새로 채용을 진행할 경우 1차 합격자의 기대권을 훼손할 수 있다”며 기존 채용 절차를 계속 진행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연맹은 면접 대상자에게 근로 조건이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리고 동의서를 다 받았다. 전문체육위원회는 3월 12일 면접을 진행해 감독 1명, 코치 3명을 최종 선정했다. 이들에 대한 선발안은 3월 16일 3차 이사회에 올라왔다. 이사회는 선발안을 부결했다. 장애인 선수 출신이 감독을 맡아야 하며, 근로 조건이 처음 냈던 채용 공고와 달라졌기 때문에 지도자를 새로 뽑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전문체육위원회가 이사회에 올린 감독 후보자는 장애인이 아니었다. 지도자 채용 절차를 그대로 진행해도 괜찮다는 법률 자문도 불필요한 일이 됐다. “특별히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데 부결하면 전문체육위원회의 독립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등의 일부 반대 의견이 있었지만, 이사회 표결은 17대2로 “부적격하다”는 의견이 압도적이었다.

연맹은 3월 23일 국가대표 지도자 채용 공고를 다시 냈다. 전문체육위원회는 지원자를 상대로 평가를 진행해 4월 13일 열린 4차 이사회에서 보고했다. 이사회는 장애인 선수 출신 장성원 감독을 뽑았다. 이 과정에서 국가대표 감독 채용이 1달 가까이 늦춰졌다.

문상필 회장은 “국가대표 지도자는 전문체육위원회에서 후보자 평가를 거쳐 추천하면 이사회에서 선발하는 게 규정이라서 문제가 없다”며 “그간 장애인이 아닌 지도자들이 장애인 선수들의 요구나 상황을 들어주고 훈련에 반영하는 게 미흡했다고 판단했다. 현 감독과 코치들이 휠체어를 타고 선수들을 일일이 지도하고 있는데 이게 장애인 체육이 앞으로 가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도자 선발이 늦어졌다고 해서 선수들 훈련에 크게 영향을 미친 것도 없다”고 덧붙였다.

◇감독, 대표 선수 3명 추가 선발 요구…전문체육위 전원 사퇴

도쿄 패럴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사격 선수는 11~12명이다. 장애인사격연맹 산하 전문체육위원회는 지난 5월 21일 온라인 회의를 열고 국가대표 선수 21명을 뽑았다. 패럴림픽 출전 인원의 2배에 달하는 선수들이 합숙훈련을 소화하면서 서로 경쟁하게 한 다음, 7월 평가전에서 패럴림픽에 나갈 선수를 최종 선발하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5월 27일 긴급 안건 논의를 위한 전문체육위원회 온라인 회의가 또 열렸다. 장성원 감독이 전문체육위원회가 뽑은 선수 21명 외에 3명을 추가로 추천한 것이다. 추천 사유는 해당 선수들의 올해 대표 선발전 기록이 2018·2019 세계선수권 본선 기록과 비교하면 경쟁력이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선발하지 않고 예외를 인정하면 대표팀에 들어오지 못한 선수가 오해할 수 있다” “올해 국가대표 선발안에 과거 기록을 참고한다는 내용이 없다” “감독의 전략적 분석에 의한 대표 선수 추가 선발은 다른 선수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다”는 반대 의견이 나왔지만, 전문체육위원회는 6대4로 대표 선수 3명 추가안을 통과시켰다.

전문체육위원회 10명 전원은 이튿날 사퇴했다. 이들은 공동 사퇴문에서 “장애인사격에 대한 남다른 애정으로 사격 발전에 이바지하고자 전문체육위원직을 맡았다”며 “현 회장님 취임 이후 여러 건의 의결 사안에 대해 전문체육위원회의 전문적, 보편적, 객관적 판단으로 충분히 논의를 통해 결정하였음에도 집행부(이사회, 대표팀 지도자)의 방향성 다른 결정에 의해 더는 투명하고 합리성을 갖춘 전문체육위원으로서 자리하지 못하겠기에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3월 장애인사격연맹 이사회에서 국가대표 지도자 선발안이 부결된 것을 사퇴 이유로 들었다. “전문체육위원회가 변호사 자문에 근거해 기존 채용 절차를 계속 진행했지만, 회장님 이하 이사회에서 전혀 타당하지 않은 사유로 부결했고 이후 채용 재공고 진행을 강행할 것을 종용받아 현재 지도자를 선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전문체육위원회가 국가대표 선수 선발 심의를 끝낸 후 지도자가 추가 인원 선발을 요구하며 전문체육위원회의 고유 권한을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장애인사격연맹은 최근 전문체육위원회를 다시 구성했다.

문상필 회장은 “국가대표 지도자들이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대표 선수를 24명으로 늘리면 지금 출전 중인 세계장애인사격월드컵(페루 리마)에서 패럴림픽 출전 쿼터를 추가로 확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표 선수 관련해선 지도자와 전문체육위원회에 모두 맡겼고, 전문체육위원회에서도 논의를 거쳐 대표 선수를 24명으로 늘리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수 선발 관련 청탁 및 불법 행위는 없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