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중국, 인도 등과 함께 세계적으로도 ‘남아 선호’ 현상이 심한 국가로 꼽혔다. 딸 그만 나오라고 ‘말(末)순이’ ‘말자’ 같은 이름을 붙이고, 아들 하나 보기 위해 ‘딸·딸·아들’ 삼남매를 둔 집도 많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1990년 출생 성비(여아 100명당 남아 수)는 116.5로 역대 최고치를 찍었다.
그러던 ‘남아 선호’ 현상이 30년 새 극적으로 뒤집어져, 지난해엔 104.8의 정상 범위(103~107명) 구간에 들어왔다. 인구학 전문가인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세계적으로 남아 선호 사상이 이처럼 빠르게 사라진 국가는 없다”며 “한국에서만 보이는 독특한 현상”이라고 했다.
전문가들은 첫째 이유로 제사나 부모의 노후 돌봄 등 ‘아들만이 할 수 있었던 역할이 사라졌다’는 점을 꼽는다. 인천에 사는 직장인 고모(25)씨는 서울에 사는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하자, 2주간 서울을 오가며 간호했다. 부모와 함께 사는 대학생 남동생도 있지만 집안 어른들이 딸인 고씨에게 간호를 부탁한 것이다. 고씨는 “부모님이 남동생보다는 가끔 집에 가는 나에게 더 의지를 하시는 편”이라며 “코로나 백신 접종 예약도 내가 해드렸다”고 했다.
아들보다 더 살갑고, 정서적 보살핌에 강한 딸들에게 애정을 느끼는 부모들이 점차 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6월 한국리서치가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자녀로 딸은 하나 있어야 한다’고 답한 비율은 57%였다. 남아 선호 사상을 직접 겪은 60대 이상에선 66%로, 오히려 평균보다 높았다. 조영태 교수는 “남아 선호의 이유였던 ‘집안의 대 잇기’는 부모가 죽은 후의 일인데, 요즘은 미래보다 현재의 삶을 더 중시하는 부모들이 많다”고 했다.
딸들은 ‘출가외인(出嫁外人)’이란 것도 옛말이 됐다. 육아 때문에 처가 근처에 모여 사는 일이 많다 보니, 최근엔 ‘신(新) 모계사회’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서울 여의도에서 일하는 직장인 이모(30)씨도 지난 5월 결혼하며 아내의 친정이 있는 인천에 신혼집을 꾸렸다. 이씨는 “5분 거리인 처가에서 밥도 얻어먹고 가족처럼 지내다 보니 장모님이 ‘제2의 어머니’가 됐다”며 “어머니는 사돈집에 아들 뺏겼단 느낌이 드셨는지 우울해하기도 하지만, 우리 부부 입장에선 양육 도움도 있고 처가 쪽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고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는 등 여성의 경제적·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며 부모도 아들에게만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다”며 “결혼한 딸이 부모 집에 들르거나 부양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서, 딸을 낳은 부모의 만족감이 높아졌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