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트트랙 국가대표 심석희가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경기 도중 최민정과 고의 충돌을 통해 승부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최근 제기된 가운데, 그에 앞서 심석희에게 금메달을 안겨주려는 대표팀 내 승부 조작 시도가 최소 두 차례 있었다는 폭로가 나왔다. 선수들에게 승부 조작을 제안한 당사자의 ‘셀프 폭로’였다.
폭로자는 심석희를 성폭행한 혐의 등으로 구속돼 2심 재판을 받고 있는 조재범 전 국가대표 코치였다. 폭로 시점은 심석희의 성폭행 미투 폭로가 나오기 4개월 전인 2018년 9월. 당시 조 전 코치는 대표팀 선수 4명을 때린 혐의로만 구속된 상태에서 기자에게 3차례 옥중 편지를 통해 승부 조작 시도를 폭로했다. 해당 시점에는 폭행 가해자로 몰린 사람의 일방 주장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기사화하지 않았다.
최근 심석희 고의 충돌 논란을 계기로 본지는 지난 8~14일 해당 폭로 등장인물들을 다시 취재했다. 최민정 측은 “답하기 곤란하다”고 했고, 심석희는 답하지 않았다.
조 전 코치에 따르면, 첫 시도는 2016년 12월 강원도에서 열린 2016-17시즌 국제빙상연맹 쇼트트랙 월드컵에서 벌어졌다. 당시 조 전 코치가 최민정을 찾아가 1500m 경기에서 한체대에 재학 중이던 심석희에게 금메달을 양보할 것을 요구했고, 최민정은 “양보할 거면 차라리 다른 종목에 출전하겠다”며 심석희가 나서지 않은 500m 경기에 출전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최민정은 연세대 재학 중이다.
실제로 최민정은 그 대회 1500m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고, 심석희는 최민정이 빠진 15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다음 시도는 2017년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였다. 조 전 코치는 편지에서 “(빙상연맹 부회장 겸 한체대 교수) A씨가 한체대 심석희가 금메달을 따야 한다며 (나를) 압박해 앞선 15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최민정이 심석희에게 금메달을 양보하게 유도하라고 시킴. (내가) 최민정에게 빌면서 부탁함. 결국 최민정이 1000m 경기에서 금메달을 양보함”이라고 했다. 다른 편지에서는 “최민정 선수 숙소를 찾아가 사정을 부탁하다시피 해서 최민정 선수가 승낙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경기 영상을 보면, 최민정은 출발 신호와 함께 선두로 치고 나가 역주를 펼치지만, 3바퀴를 남겨둔 시점에서 심석희가 인코스를 파고들자 진로를 막지 않는다. 이때 두 사람의 순위가 뒤바뀌고 선두를 내준 최민정은 이후 자기 뒤에서 달리는 3·4위가 추월을 시도할 때는 진로를 가로막는다. 결국 심석희는 금메달을 따냈다.
이 경기 직후 유튜브 댓글난에도 최민정에 대해 “막판에 스피드를 조절한 것 같다” “결승선에서 스케이트 날을 왜 내밀지 않았나” 등의 의견이 분분했었다.
2018년 9월 최민정은 ‘승부 조작을 제안받은 사실이 있느냐’는 질문에 “예민한 부분이라 회사와 상의해서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고 했었다. 이달 14일 최민정의 매니지먼트사 관계자는 “지금도 당시 최민정의 대답 그대로”라며 “더는 언급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심석희와 그의 매니지먼트사는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조 전 코치는 이와 같은 승부 조작 시도가 있었던 이유에 대해 A씨의 ‘한체대 실적’ 때문이라고 했다. 조 전 코치는 “한체대 교수였던 A씨는 연세대로 간 최민정의 성적이 한체대 출신보다 좋다는 이유로 나를 압박했다”며 “이 과정에서 나에 대한 폭행과 함께 승부 조작 지시가 있었다”고 했다. A씨는 “당시 그럴 위치에 있지 않았고,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