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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보인가 봐.” “기억이 부서지지 않아. 너무 딱딱해.” “내 머릿속에서 하루가 지날 때마다 그 이야기가 너무 커져.”

지난해 8월 A씨는 6살 딸이 “슬프다”며 털어놓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유치원 교사가 고기, 부추, 김치, 밥을 모두 섞어서 억지로 먹였다고 했다. 결국 삼키지 못하고 화장실에 가서 구역질했는데, 세면대에 밥이 꽉 차 있었다고도 했다. A씨는 처음에는 “선생님이 튼튼해지라고 먹인 건 아닐까?”라고 물었다. 그러나 딸은 입에 주먹을 넣는 시늉을 하며 “억지로 먹였다” “뱉으려고도 했는데 그래도 선생님이 먹으라고 그랬다”고 했다.

딸은 이후에도 시도때도없이 당시의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에게 털어놓고 잊어버리라고 했지만 “기억이 너무 딱딱해서 부서지지 않는다”고 했다. 유치원 담임 선생님도 “아이가 요즘 많이 힘든 것 같다”며 “예전 세면대 이야기를 한다”고 알려왔다. 결국 딸은 스트레스 사건에 대한 반복회상 및 과도한 불안으로 인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진단을 받았다.

A씨는 조선닷컴과의 통화에서 “딸이 말한 식단이 나온 날은 지난해 초로, 이전에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이 밥을 억지로 먹였다는 이야기를 딸은 반년이 지나 꺼내기 시작했다”며 “차라리 신체 학대였다면 금방 알아차렸을 텐데 너무 뒤늦게 알아버려 더욱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신체학대, 성학대와 달리 외상이 없는 정서 학대는 아동이 적극적으로 알리지 않으면 알아차리기가 힘들다. A씨는 “우리 아이는 특이하게 당시의 사건을 계속 말하는 증상을 겪어서 그나마 피해 사실을 알 수 있었다”며 “그러나 유치원에서는 ‘놀이 중에 한 말들’이라며 무시했다”고 말했다. 딸은 “선생님이 사과했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해당 선생님은 “억지로 먹인 적은 없다. 아이가 밥을 뱉어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으라고 한 게 전부”라고 반박했다는 게 A씨의 말이다.

신고를 접수한 서울경찰청 여성청소년과 아동학대전담팀은 CCTV 자료를 분석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관할 구청에 전수조사를 지시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해당 유치원 측은 “A씨의 이야기를 듣고 바로 회의를 소집해 선생님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두 확인했다”며 “학부모와 선생님의 주장이 워낙 달랐다. 현재 경찰 조사가 진행 중이니 이에 성실히 응하고 있다.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라고 했다.

◇늘어나는 아동 정서학대…억지로 먹인 교사 벌금형도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아동학대 중 정서학대 발생 건수는 2011년 909건에서 2020년 8732건으로 10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아동학대가 6058건에서 3만905건으로 5배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가파른 증가세다.

최근 법원은 세 살 아이가 거부하는데도 억지로 고기반찬을 먹인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에게 벌금형을 선고했다. 울산지법 형사4단독 박주연 부장판사는 3살 원생이 거부하는데도 억지로 고기 반찬을 먹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보육교사 B씨와 C씨에게 각각 벌금 100만원과 150만원을 선고했다고 2일 밝혔다. 박 부장판사는 “아동의 감정이나 의사를 존중하지 않고 어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행위를 강요하면 정서적 학대가 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