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20년 후, 경제 규모에서 한국에 추월 당한다”

일본 대장성(현 재무성) 관료 출신의 원로 경제학자 노구치 유키오(81) 국립 히토츠바시대 명예교수는 지난달 일본의 경제 전문지 ‘겐다이 비즈니스’와 ‘도요게이자이’에 이같은 내용의 기고문을 내고 자국의 경제 정책을 강하게 비판했다.

노구치 유키오(81) 국립 히토츠바시대 명예교수/MBC라디오 유튜브 영상 캡처.

노구치 명예교수는 다양한 통계와 국제 순위를 들며 “한국은 이미 일본을 앞질렀다”, “한국은 일본보다 풍요로운 나라로 변하고 있다”고도 했다.

노구치 명예교수가 근거로 제시한 통계와 순위를 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 2020년 평균 임금은 일본 3만8515달러(약 4619만원), 한국 4만1960달러(약 5033만원)로 한국이 앞선 상태다. 주식 시가총액 세계 100대 기업 중 한국은 최상위가 삼성전자로 14위에 올라있지만, 일본에서 가장 높은 도요타자동차는 36위다. 시가총액 규모 자체도 약 2배 차이 난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이 최근 발표한 국가 경쟁력 순위에서도 한국은 23위, 일본은 31위로 차이가 난다.

특히 노구치 명예교수는 1인당 GDP(2020년 기준)가 일본(4만146달러)이 한국(3만1496달러)보다 아직 높으나, 문제는 ‘성장률’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본은 2000년부터 20년간 1.02배 늘어난 것에 비해 한국은 2.56배 성장했다. 2000년 일본의 31%에 불과했던 한국의 1인당 GDP는 78%로 격차가 좁혀진 상태다. 20년 후 일본의 1인당 GDP는 한국에 2배 이상 뒤질 것”이라며 “주요 7개국(G7) 회원국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바뀌어도 일본은 할 말이 없다”고 쓴소리를 했다.

노구치 명예교수는 중국의 공업화 성공 후, 이에 따른 한일 양국의 대처가 이 같은 차이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했다. 그는 10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1990년대부터 중국이 공업화에 성공하면서 그때까지 선진국이 만들어 놓았던 제조업 분야의 제품들을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수출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따라 선진국들이 큰 영향을 받게 됐다. 이 시점에 일본은 중국과 가격 경쟁하는 걸 선택했다”고 말했다. 즉 중국이 저렴한 가격으로 수출품을 내보내면, 일본도 제품의 가격을 낮춰 대응했다는 것이다.

노구치 명예교수는 “일본은 엔화를 싸게 평가절하하는 방식을 택했다. 여러 가지 수단을 써가며 엔화 가치를 떨어뜨려 수출 가격을 가능한 한 낮춘 것. 일본 기업의 수익은 늘어났지만, 기술 개발을 하거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는 노력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반면 “한국은 생산성 자체를 높이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높이는 전략을 취했다”며 “그 결과 근로자들의 임금도 상승했고, 원화의 가치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런 결과가 20년간 지속돼 오면서 지금의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가져다준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이 반도체 기술과 관련해 일본의 우수 인력을 빼갔다는 일본 보도에 대해선 “이건 아주 옛날 1980년대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노구치 명예교수는 “지금 세상은 너무나 많이 변했다. 한국에는 삼성 같은 기업이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 중 하나가 됐다. 그렇기 때문에 첨단 반도체 생산이 가능하게 됐다. 일본의 반도체 메이커는 현재로서는 절대 삼성을 따라갈 수 없다. 2010년 일본에서 타도 삼성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열심히 해보려고 했는데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저는 한일 반도체 산업에 큰 차이가 생긴 것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일 양국이 저출산·고령화로 노동력 부족 문제에 직면하게될 것이라며 미국처럼 외국인 노동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노구치 명예교수는 “일본은 지금까지 외국인 노동력 도입에 굉장히 소극적이 나라였다. 저는 노동력이 부족한 상황인데도 받지 않는 것에 대해 합리적이지 않다고 보는 입장이다. 한국도 일본만큼은 아니지만 적극적이라고 볼 순 없을 것 같다. 따라서 한국이 노동력이 부족해졌을 때 외국으로부터 들여오는 노동력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이행할지에 대한 부분이 가장 큰 과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노구치 명예교수는 한일 관계 회복이 꼭 필요하다며, 국민 간 교류가 증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부 간 관계도 대단히 중요하겠지만 학생은 학생대로 근로자는 근로자대로 많은 국민 레벨에서의 교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서로 사고를 이해하고 서로의 가치관을 이해하는 것,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거리를 넘어선 커뮤니케이션이 이제 기술로 가능해졌기 때문에 이런 도구를 활용해서 한 사람 한 사람 또는 그룹과 그룹이 서로 이해하는 폭을 넓혀갔으면 한다”며 “이런 것들이 많아지면 차차 한국과 일본의 관계 또한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희망한다”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