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내 한 여자고등학교 학생의 군인 위문편지 논란이 격화하고 있다. 학생이 쓰기 싫은 편지를 학교 지시에 따라 억지로 쓰는 데 대한 불만을 편지에서 드러냈고, 이를 군인이 인터넷에 공개하면서 시작된 논란이다. 남성 네티즌 중심으로 해당 여고생 신상을 터는 등 과격한 반응이 나오면서 논란은 젠더 갈등 양상을 띄기 시작했고, 12일엔 “편지에 공감한다”는 취지로 말한 해당 학교 학생을 내쫓았다고 선언하는 학원까지 나왔다.

지난 11일 온라인커뮤니티, 페이스북에 여고생이 군 장병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되는 위문편지가 게시됐다./ 온라인 커뮤니티

서울 양천구 소재 모 수학학원의 A원장은 12일 인스타그램에 B여고 학생들이 군 장병들에게 보낸 위문편지 사진을 올린 뒤 “B여고 수준 잘 봤다. 앞으로 절대 B여고 학생은 가르치지 않을 것이다. 재원하고 있는 학생들도 내일 전부 퇴원 처리하겠다”고 적었다.

이후 A원장 인스타그램에는 “극단적이다” “일부 위문편지만 보고 애꿎은 학생들을 내쫓는게 교육자로서 옳은 태도냐”라며 A원장의 결정을 비판하는 댓글이 쏟아졌다.

그러나 A원장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번엔 2016년 제주 신성여고 학생들이 군 장병에게 보낸 세 통의 편지 사진을 올린 뒤 “나라를 위해 귀한 시간과 몸과 마음 희생한 국군 장병들을 위문해준 제주의 명문 신성여고 학생들께 깊은 사의를 표한다. 이런 인성을 가진 학생들이 있는 학교가 명문이다. 감사하다”는 글을 올렸다. ‘TO. 군인오빠’로 시작하는 세 통의 편지에는 “많이 힘드시죠. 힘내세요”, “다치지 마시고 안전하게 돌아오세요”라며 군인들을 격려하는 내용이 담겼다.

2016년 제주 신성여고 학생들이 군 장병들에게 쓴 위문편지/A원장 인스타그램

이후 A원장 인스타그램에는 A원장을 비방하는 댓글과 DM(다이렉트 메시지)이 쏟아졌다. A원장은 자신에 대한 허위사실·성희롱 댓글에는 법적 대응을 하겠다며 부천의 한 경찰서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현재 A원장 학원에 다는 B여고 학생은 총 6명이다. A원장은 이날 조선닷컴과의 통화에서 “편지내용에 동의하는 학생 1명이 있는데, 이 학생에게는 오늘 문자로 퇴원 통보할 것”이라며 “편지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학생들은 계속 다닐 수 있다”고 전했다.

이번 논란은 전날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B여고 두 명이 군 장병들에게 보낸 위문편지 내용이 공개되면서 시작됐다. 지난달에 작성된 편지에는 “저도 이제 고3인데 이딴 행사 참여하고 있으니까 님은 열심히 하세요” “추운데 눈 오면 열심히 치우세요^^” “군대에 샤인머스켓은 나오나요? 저는 추워서 집 가고 싶어요” 등의 내용이 담겼다.

이를 본 남성 중심 커뮤니티 회원들은 “군인 비하다”, “조롱하냐”며 분노했다. 이후 학생들을 향한 악플과 성희롱성 발언이 이어졌다. 편지 작성자로 추정되는 학생의 신상도 공개돼 합성사진까지 온라인상에 퍼졌다. 디시인사이드 한 회원은 이날 밤 B여고 앞에서 찍은 사진을 올리며 협박성 글을 올리기도 했다.

논란이 커지자 B여고 재학생들은 “학교에서 위문편지 가이드까지 나눠주며 강제로 시켰다. 아이들이 반발한다고 저렇게 편지를 쓴 것”이라고 해명했다. 재학생이 공개한 ‘위문편지 가이드’에는 ‘학번, 성명, 주소, 전화번호 등 개인 정보 기재 금지. 개인정보를 노출시키면 심각한 피해를 볼 수 있음’이라고 적혀 있다.

진명여고가 학생들에게 배포한 위문편지 가이드 /트위터

재학생들의 입장이 전해진 후,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여자고등학교에서 강요하는 위문편지 금지해주세요’라는 청원이 등장하기도 했다. 청원인은 “위문편지 주의점에 ‘개인정보 노출시키면 심각한 피해를 볼 수 있음’이라 적혀있다. 편지 쓴 학생에게 어떤 위해가 가해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편지를 써야 한다는 것은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성년자에 불과한 여학생들이 성인 남성을 위로한다는 편지를 억지로 쓰는 것이 얼마나 부적절한지 잘 아실 것”이라고 했다. 해당 청원은 12일 오후 4시 기준 5만8000여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