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단체 신전대협이 지난 3일 새벽 연세대 중앙도서관 게시판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를 비롯한 수사 기관들로부터 통신자료를 조회당했다며 “문재인 정부의 대학생 통신 사찰”이라며 통신 조회를 규탄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다. /남강호 기자


문재인 정부의 정책을 비판한 학생·시민단체 인사들이 공수처를 비롯한 수사 기관으로부터 무더기 통신자료 조회를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수사를 받거나 재판 중인 상황이 아님에도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는 이유만으로 사실상 ‘사찰’을 당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본지 취재에 따르면, 인천지검은 작년 11월 8일 조재완 녹색원자력학생연대 대표와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 김수진 국민희망교육연대 상임대표 등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조 대표는 원자력 전공 대학생들과 함께 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비판하는 활동을 벌여왔다. 유 원장과 김 대표는 각각 정부의 대북 정책과 교육 정책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다. 앞서 인천지검이 김태일 신전대협 의장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등을 대상으로 통신자료 조회를 벌인 사실이 알려졌는데 같은날 이들의 정보도 조회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범시민사회단체연합(범사련)의 이갑산 회장과 임헌조 사무총장도 같은날 인천지검으로부터 통신자료 조회를 당했다. 범사련은 조국 전 법무장관의 파면을 요구하고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 진상 규명에 나서는 등 문 정부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임 총장은 “80년대 학생운동 할 때와 노무현 정부 말기에 통신자료 조회를 당해봤지만, 요즘 시대에도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며 “당장 대선 일정을 중단하고 헌법을 유린한 전체주의 정부에 투쟁해야 할 만큼 커다란 사안”이라고 했다.

정부와 민주당의 언론 정책에 반대한 현직 언론인도 통신자료 조회를 피해가지 못했다. 공수처 수사3부(부장 최석규)는 작년 8월 2일 이영풍 KBS노조 정책공정방송실장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같은해 10월 1일 공수처 수사과는 한 차례 더 이 실장의 통신자료를 조회했다. 이 실장은 민주당의 언론중재법에 반대하며 언론독재법 철폐범국민 공동투쟁위원장으로 활동한 바 있다.

수사 기관이 시민운동가와 재계 인사, 심지어 대학생을 대상으로 통신자료 조회를 벌인 사실이 속속 드러나며 현 정부의 ‘사찰’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한상희 건국대 로스쿨 교수는 “수사 기관이 제멋대로 통신자료 조회를 남발하는데, 이를 통제할 수단이 없을뿐더러 조회 사실을 알려주지도 않는다”며 “수사 기관의 목적이 무엇이든 ‘사찰’ 의심을 불러 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제도적으로 통신자료 조회를 위해 법원에서 영장을 받도록 하는 등 통제하는 절차가 필요하고, 당장은 공수처장이나 인천지검장 등 수사 기관의 책임자가 나와 통신자료 조회 경위를 상세히 설명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