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성 주중대사(전 청와대 정책실장·왼쪽),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

약 2562억원의 투자자 피해가 발생한 사모펀드 ‘디스커버리 펀드’에 장하성 주중대사(전 청와대 정책실장)와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각각 60억여원과 4억여원을 본인과 가족 명의 등으로 투자한 것으로 9일 알려졌다. 이 펀드는 장 대사의 동생인 장하원 디스커버리자산운용대표가 만든 것으로, 2019년 4월 환매 중단 사태가 터져 거액의 투자자 피해가 발생했다.

그동안 이 펀드와 관련해선 규모를 급격히 키우는 과정에서 장 대사의 연루 의혹이 제기됐으나, 장 대사는 그동안 직접 동생 펀드에 투자한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핵심 인사였던 장 대사와 김 전 실장이 특수 관계인이 운영하는 사모펀드에 투자한 것이 적절했는지, 이 펀드 운영 과정에 개입했는지 등을 두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장 대사가 펀드에 투자한 시기는 그가 청와대 정책실장에 부임한 뒤 2개월이 지난 2017년 7월이었고, 김 전 실장도 비슷한 시기 자신이 공정거래위원장으로 있을 때 투자했다.

이와 관련, ‘디스커버리 펀드 환매 중단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9일 장 대사의 동생 장하원 대표를 소환해 조사했다. 미국에서 디스커버리 펀드의 부실 문제가 불거지며 환매 중단 사태가 벌어진 2019년 4월 이후 34개월 만이다. 장 대표는 펀드가 부실화할 수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고객들을 속여 투자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그가 펀드를 부실하게 운용한 정황을 상당 부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에 따르면 장 대표는 2016년 자본금 25억원으로 디스커버리를 설립해 이듬해부터 미국 핀테크 기업 등에 투자한다고 하는 ‘US핀테크글로벌채권 펀드’ 등을 기획해 운용했다. 기업은행⋅하나은행 등이 디스커버리의 펀드를 주로 판매했다. 그런데 2019년 4월 고객 투자금을 운용하던 미국 자산운용사 ‘DLI’가 실제 수익률과 투자 자산 실제 가치 등을 허위 보고했다는 사실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적발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미국 금융 당국이 펀드 자산을 동결하면서 국내 투자자들이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들이 상환받지 못한 금액은 지난해 4월 기준 2562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모펀드는 불특정 다수 투자자가 돈을 넣는 공모펀드와 달리 소수 투자자로부터 유치한 자금을 특정 목적에 따라 자산운용사가 따로 투자하는 펀드를 말한다. 장 대사와 김 전 실장은 일반 투자자와 다른 조건의 펀드에 가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만기 전 환매가 불가능한 ‘폐쇄형 펀드’에 투자한 일반인 펀드 피해자들과 달리 중도에 입출금이 자유로운 ‘개방형 펀드’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경찰은 펀드 부실이 불거지기 전 두 사람이 일반 투자자와 달리 손실을 피하거나 투자금을 보전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이날 디스커버리 펀드 투자 사실이 알려지자 투자를 했다는 건 인정하면서도 위법성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장 대사는 이날 공개한 입장문에서 “펀드 가입과 관련해 공직자 윤리법 등 법률 위반 사항이 없다”며 “고위 공직자 주식 소유 제한에 따라 정책실장 취임 후에 신고한 보유 주식 전량을 매각해 펀드에 가입한 것”이라고 밝혔다. 김 전 실장도 “공직자 재산 등록 시 투자 내역을 성실하게 신고했고 관련법상 의무를 위배한 바 없다”면서도 “필요한 사항이 있다면 관련 사실을 투명하게 소명하겠다”고 밝혔다. 공직자윤리법에 고위공직자의 사모펀드 투자를 규제하는 조항은 없다. 하지만 한 변호사는 “고위 공직자 신분으로 동생 펀드에 거액을 투자했다는 점에서 윤리적인 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일반인 피해자들도 두 사람이 책임을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피해자 모임의 이의환 상황실장은 “당시 은행 등 판매사에서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친동생이 대표로 있는 운용사’라는 설명을 들었다는 피해자들이 부지기수”라고 주장했다. 실제 이 펀드는 신생 운용사가 처음 내놓은 사모펀드인데도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이 밀어줬고, ‘장하성 동생 펀드’라며 팔려나갔다.

경찰은 작년 초 이 사건에 대한 내사에 착수해 작년 7월 장 대표를 출국금지하고 판매사인 기업은행⋅하나은행⋅한국투자증권⋅하나금융투자 등에 대한 압수 수색을 벌이며 수사를 본격화했다. 경찰은 장씨가 펀드 부실화 가능성을 알고도 판매를 강행한 뒤 투자금을 돌려 막은 정황을 포착해 조만간 그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