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가정 폭력을 일삼아 어머니와 이혼한 아버지가 건강이 좋지 않아지자 갑자기 연락해 수술비와 부양료를 요구했다. 도의적인 문제를 떠나 법적으로 이 자녀는 부모를 부양해야 할까.
10일 방송된 YTN 라디오 ‘양소영 변호사의 상담소’에 소개된 사연이다. A씨는 “어린 시절 저와 엄마는 하루가 멀다 하고 아버지의 폭행에 시달렸다”며 “아버지는 생활비도 제대로 주지 않았고, 엄마가 식당 아르바이트를 해서 제가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고 했다. A씨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어머니는 이혼을 요구했고, 아버지의 반대로 이혼 소송이 진행됐다. A씨는 어머니를 돕기 위해 진술서를 작성했고, 아버지는 이 일을 원망하면서 연락을 끊었다는 게 A씨의 말이다. 그는 “그 후 아버지가 재혼했다는 말만 전해들었다”며 “제가 결혼한 후에는 어머니가 함께 지내며 저희 아이들을 돌봐주시고 제가 생활비를 드리고 있다”고 했다.
A씨는 “최근 아버지가 다시 이혼했고 위암 수술 후 완치 중이라는 말을 전해들었다”며 “얼마 전엔 ‘딸래미가 떵떵거리며 잘 살면서 아버지도 돌보지 않느냐. 건강이 안 좋아 직장도 잘렸으니 그간 대출받아서 사용한 수술비와 월 200만원씩 부양료를 달라’는 연락을 해왔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를 떠올리면 고통스러운 기억밖에 없는데, 매월 200만원씩 부양료를 드려야 할까요?”라고 물었다.
김선영 변호사에 따르면 민법 제974조는 부모, 자식 간의 부양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직계 혈족인 부모, 자식 간 상호 부양할 의무가 있는 것은 물론이고 직계혈족의 배우자나 자녀의 배우자, 즉 시부모와 며느리 간에도 부양의무를 부담한다. 다만 혼인 생활 중인 부부간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상호 동일한 정도의 수준을 누릴 수 있도록 부양할 의무가 있지만 부모와 자녀 간에는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부모가 자력 또는 근로에 의해서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경우, 또 부양의무를 지더라도 자녀가 현재 생활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경우에 한해 부양의무를 부담한다.
A씨의 경우 자녀를 양육하며 어머니 생활비도 부담하고 있기에 매월 200만원을 아버지에게 지급한다면 현재 생활을 유지할 수 없다고 보인다는 게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그렇기에 부양료 청구를 부인하거나 감액을 주장할 수 있다. 또 아버지가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의 생활 수준이라는 점이 인정돼야 하는데, 그간 모아둔 자산이나 퇴직금 등이 있다면 스스로 부양할 능력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동안 아버지가 자녀에 대한 부양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점도 고려할 수 있다. 김 변호사는 “법원은 부모와 자식 간에 교류가 있었는지를 고려한다”며 “사연처럼 심각한 폭력이 있고 자녀의 생계도 돌보지 않은 부모의 경우 부양 청구권이 권리 남용에 해당한다고 본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A씨 아버지가 요구하는 것처럼 과거 지출한 수술비는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김 변호사는 “부양료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부양료는 장래에 한해 이행을 청구하는 것이 원칙”이라며 “이전 부양료 지급은 청구할 수 없다는 판례가 있다”고 했다. 또한 “부양료가 어느 정도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200만원이 나오는 경우는 흔치 않다”며 “30만~80만원 정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