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조선일보 DB

감사원이 최근 익명 게시판을 만들었다가 ‘내부 검열’ 논란에 휩싸였다. 게시판에 올라온 감사원 비판 글을 임의로 삭제하고, 직원들이 올린 글들을 일일이 검토해 ‘승인’이 난 글만 게시판에 선별 게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감사원 안에선 “이럴 거면 익명 게시판은 뭐하러 만들었느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감사원은 지난달 23일 내부 온라인망에 ‘함께 생각합시다’라는 익명 게시판을 신설했다. 내부 문제와 개선점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이날 이 게시판엔 한 감사관이 이직에 대해 쓴 글이 올라왔다. 해당 감사관은 글에서 “저는 특채로 감사원에 들어왔고 최근 이직을 고려 중”이라며 “감사원에 있었던 동안의 경력이 시험 동기들에 비해 오히려 부족하다고 느낀다”고 했다. 감사원은 변호사나 회계사를 특채로 뽑는다. 그는 “처음 감사원에 들어올 땐 이 조직에 뼈를 묻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러나 승진 적체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몸값을 상승시킬 가망이 없는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나가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감사원은 현 정부 들어 정권에 부담이 되는 민감한 감사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다는 게 감사원 안팎의 공통된 평가다. 감사원이 주요 감사 현안을 소홀히 하면 공공기관이나 법무법인 등이 ‘감사원 리스크’에 대응할 필요성이 떨어진다. 이렇게 되면 감사원 출신들에 대한 외부 수요가 급감한다는 게 정부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글을 올린 감사관은 ‘몸값’이 더 떨어지기 전에 감사원을 떠나는 직원들이 줄을 잇고 있는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그런데 감사원은 이 글이 올라온 당일 글을 삭제했다. 내부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말하라고 게시판을 만들더니 정작 내부 문제 비판 글이 올라오자 지운 것이다. 이후 감사원은 모든 글을 사전 검토해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글만 게시판에 올라가게 했다. 이에 한 감사관은 3일 “댓글을 달아도 바로 업데이트가 안 되고, 심지어 글도 바로 게시가 안 된다. 이 모든 것이 관리 부서의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하느냐”고 불만 글을 올렸다.

그러자 10개 안팎의 동조 댓글이 달렸다. “글을 올린 지 일주일이 넘은 것 같은데 아직 게시가 안 됐다” “승인이 웬 말이냐. 이래서 무슨 혁신이냐”는 댓글이 올라왔다. 한 감사관은 댓글에서 “글을 중간(사전) 검토한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왜 공지도 안 했나. 이러면 익명 게시판의 진정성이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냥 게시판을 없애라” “조만간 이 게시판 폐지되겠다”는 댓글도 달렸다. 젊은 감사관들은 “공무원들의 글을 사전 검열하고, 마음에 안 들면 마음대로 삭제하는 정부 기관은 감사원밖에 없을 것” “30~40년은 뒤처진 조직”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감사원은 “글을 삭제한 것이 아니라 게시판 성격과 맞지 않아 숨김 처리한 것”이라며 “시간이 지나면 지적이 나온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