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오전 10시 30분쯤 서울 마포구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사무실에 40살 아들의 손을 꼭 잡은 조명순(76)씨가 들어왔다. 그는 품을 뒤적이더니 “동해안 산불로 피해를 본 사람들을 돕고 싶다”며 1000만원짜리 수표 한 장을 꺼냈다.

조씨는 기초생활수급자로 서울 노원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장애가 있는 아들과 단둘이 산다. 아들 박웅선(41)씨는 6살 때 교통사고를 당했다. 사고 후 3년간 병원 침대에 의식 없이 누워만 있었을 정도로 크게 다쳤다. 의식을 차린 뒤에도 자폐 증세를 보였고 언어·시각 장애가 생겼다. 조씨는 그 뒤부터 지금까지 아들을 홀로 키워왔다.

기초생활보장수급자 조명순(76)씨가 동해안 산불로 피해를 본 이들을 위해 써 달라며 내민 1000만원짜리 수표.

두 사람은 매달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수당을 더해 90만~110만원을 받는다. 지난 30년간 매달 이 중 몇 만원씩을 모아 만든 1000만원을 이번에 기부한 것이다. 평소 다니는 교회에서 지으려던 장애인복지센터에 기부하려고 했지만 센터 건립이 무산돼 기부할 곳을 찾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최근 TV에서 동해안 산불 모금 방송을 보고 기부를 결심했다. 조씨는 “제가 나라 도움을 많이 받아왔고, 지금도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으니 그걸 돌려주자는 마음을 갖게 됐다”면서 “이건 누구를 돕는 게 아니라 보답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평소에도 조씨는 적은 생활비를 아껴가며 꾸준히 작은 기부를 이어왔다고 했다. 2016년쯤부터 최근까지 대한적십자사 희망풍차에 본인과 아들 이름으로 매달 10만원을 기부하고 있다. 집 근처 돌봄센터에도 1년에 3~4차례 10만원씩 기부한다. 그는 “죽을 때까지 계속 기부할 생각”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마음이 흐뭇한 게 잘 사는 것 같아요. 주고 나면 즐거워요. 다음에는 좀 더 많이 보태야지. 매번 그런 마음을 가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