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올해 예산을 놓고 충돌했던 서울시와 시의회가 추가 경정 예산을 놓고 또다시 ‘예산 전쟁’을 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이 장악한 시의회는 오세훈 서울시장의 공약 사업 예산은 대폭 삭감한 반면, 오는 6월 1일 지방선거를 앞두고 시의원들의 지역 관련 예산은 대폭 늘렸다. 이에 따라 추경안 처리가 늦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306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 참석하고 있다./뉴스1

4일 서울시와 시의회에 따르면, 시의회 각 상임위원회는 오 시장의 대표 공약 사업인 청년 대중교통 요금 지원 사업(78억원), 청소년들의 재무상담 지원 사업인 영테크 사업(7억원), 서울형 교육 플랫폼 ‘서울런’ 구축 사업(32억원) 예산을 모두 삭감했다. 이 예산들은 지난해 본예산 심사에서 삭감된 이후 서울시가 다시 추경안에 포함한 예산들이다.

시의회는 또 대중교통 적자를 보전해 주기 위해 편성한 시내버스 재정 지원 예산 500억원, 지하철 1~8호선 재정 지원 예산 90억원도 삭감했다.

반면 지방선거를 염두에 둔 시의원들의 지역 사업 예산은 대폭 증액됐다. 시의회 교통위원회는 재정 적자가 예상되는 시내버스 지원 예산은 절반(500억원)을 삭감한 반면 일부 자치구의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 설치와 도로 개선 사업 등의 예산으로 182억원을 증액했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도 시 문화본부 예산 심사에서 각 자치구 문화예술거리 조성, 사찰 정비 지원, 불교 문화 체험 프로그램 지원, 축제 지원·육성 등의 명목으로 168억원을 증액했다.

특히 각 상임위에서 증액한 사업들 중에는 시의원들의 지역구 관련 사업들이 다수 포함됐다. 문체위는 성북천 문화예술거리 조성, 우이천 문화예술거리 조성, 전통 사찰 정비 지원 사업, 장안동 세계거리 춤축제 지원 예산 등을 추경에 새로 포함했다. 야구·검도·탁구대회 등에 각각 2억원의 예산이 책정됐고, 라인댄스(여러 사람이 줄을 지어 추는 춤) 대회 예산으로도 2억9000만원이 책정됐다. 유·청소년 골프 프로그램과 승마 체험 교육 예산도 각각 2억원이 편성됐다. 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는 구로노인종합복지관의 낡은 당구대·탁구대 교체 비용 2000만원 등을 포함해 추경에서 9개 사업에 21억원을 증액했다.

이번 추경안은 코로나 장기화에 따른 민생 회복과 방역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 17일 1조1239억원의 추가경정예산안을 마련해 시의회에 제출하면서 “올해 역대 최대인 44조원 규모의 본예산을 편성해 코로나로 무너진 민생 회복을 위해 중점 투자하고 있지만, 오미크론 확산 등 민생의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고 방역 수요가 급증해 조기 추경을 단행했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시의회가 증액한 사업들이 시급한 사안인지 꼼꼼히 따져보겠다는 입장이다. 시 관계자는 “코로나 위기 극복과 민생 회복이 조기 추경의 최우선 목표”라며 “시의원들이 증액을 요청한 사업들이 이런 기조에 부합하는지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지방 선거를 앞두고 선심성 지역 사업 예산이 다수 포함돼 있는 게 아닌지 살펴보겠다는 취지다.

이와 관련해 김인호 시의회 의장은 지난달 25일 열린 임시회 개회사에서 “작년 말 본예산 심사 당시, 코로나 민생회복 대책 예산을 확보하느라 노후 시설 개선 같은 지역 현안들을 미뤄야만 했다”며 “정말 어쩔 수 없이 양보해야만 했던 지역 필수 예산들이 지금 줄줄이 밀려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서울시는 지역 현장의 필요를 최우선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오 시장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청년 대중교통 지원 사업 예산이 또다시 삭감됐다’는 제목의 글을 올려 “아직 예결위 심의가 남아있다. 청년들을 위한 사업 예산은 원안대로 통과될 수 있도록 (시의회가) 심사숙고해달라”고 했다.

시의회는 이날까지 상임위 예비 심사를 마무리하고, 5~7일 예산결산위원회 본 심사를 거쳐, 오는 8일 본회의에서 예산안을 처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