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누군가는 장기를 기증받아 새 삶을 얻는다. 하지만 고마움을 전하고 싶어도 누가 장기를 기증하고 세상을 떠났는지는 알 수 없다. 장기 거래를 막기 위해 서로의 인적 사항을 알지 못하도록 법에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장기 기증인 유가족을 위한 특별사진전이 11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한 갤러리에서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본부) 주최로 열렸다. 장기 기증인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그들의 뜻을 기리기 위한 자리였다. 뇌사 장기 기증인 유가족 25명, 이식을 받은 사람과 그 가족 9명이 참석했다. 서로 직접 장기 기증이 이뤄지지 않은 사람들과 가족들만 모았다고 한다. 이런 행사가 열린 건 처음이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김리원(6)양도 장기 기증을 받아 건강을 되찾았다. 리원이는 2016년 8월 태어난 지 78일 만에 선천적으로 간과 비장이 비정상적으로 커지는 담도폐쇄증이라는 병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간 이식이 필요했지만 부모의 장기는 부적합하다는 판정이 나왔다. 하지만 진단 후 약 1년 만인 2017년 7월 장기 기증자가 나타났고, 수술을 통해 리원이는 건강을 되찾았다.
리원이 엄마 이승아(34)씨는 이날 “지난 몇 년간 이식 수술을 받은 날이 돌아올 때마다 리원이와 함께 기도를 했다”며 “리원이가 이식 수술을 받은 날이 장기를 기증해 주신 분이 돌아가신 날이 아닐까 생각해서 감사하는 마음을 전했다”고 했다. 리원이는 종종 보름달을 보며 “달님, 천사님에게 고맙다고 전해주세요”라고 소원을 빈다고 한다.
2010년 세상을 떠난 왕희찬(당시 4세)군은 5명에게 새 생명을 줬다. 왕군의 아버지는 폐렴을 앓다가 뇌 손상을 입은 아들의 회생이 어렵다는 얘기를 의료진으로부터 듣고 “아들을 헛되이 떠나보낼 수 없다”면서 장기 기증을 결정했다. 왕군의 동생 수현(12)양은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오빠를 기리며 ‘하늘에서 행복한 오빠의 사진 편지’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려 이날 리원이에게 선물했다. 수현양은 “리원이가 오빠에게 직접 이식을 받지는 않았지만, 리원이와 모든 이식인들이 앞으로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길 바란다”고 했다.
두 살 딸을 키우는 김지은(33)씨는 가슴에 다른 사람의 심장이 뛴다. 20대에 심장 질환을 앓아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겼다는 그는 2017년 9월 심장을 이식받은 뒤 일반인처럼 생활할 수 있게 됐다. 결혼도 했고 2020년 아이도 낳았다. 의학적으로 심장을 이식받은 이들에게 출산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한다. 김씨는 이날 기증자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힘차게 뛰는 심장에 손을 얹고 백 번, 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며 “기증인이 준 소중하고 힘찬 심장 덕분에 저는 엄마가 되었다”고 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박진탁 이사장은 “사진전을 계기로 다시 한번 뇌사 장기 기증인과 그 가족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며 “생명을 이어받은 이식인들도 진심으로 응원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