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 만나는 동안 제가 낸 돈은 총 16만5000원입니다. 절반 보내주세요.”
소개팅에서 만난 남성의 교제 요청을 거절하자, 직장인 김예슬(28)씨 휴대폰으로 ‘청구서’가 날아들었다. 자신과 사귀지 않을 거면 단돈 1원도 손해를 보지 않겠다는 의지가 느껴져 김씨는 비용의 절반을 계좌로 보냈다.
공정, 평등을 삶의 주요 가치로 여기는 요즘 젊은 남녀들은 연애 비용도 딱 반으로 분담한다. 반반씩 돈을 모아 함께 사용하는 데이트 통장을 만드는 건 기본이다.
그러나 ‘반반’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갈등을 빚는다. 2021년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조사에 따르면, 만 19~59세 성인 남녀 중 절반 이상(54.1%)이 ‘데이트 비용을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고 응답하면서, 10명 중 8명(80.8%)은 ‘데이트 비용 문제로 이별을 할 수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2030 세대가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반반 데이트에 대한 불평이 잇따른다. “내가 고기 2인분 먹을 동안 남자친구는 5인분을 먹는데 데이트 통장은 손해 아닌가” “데이트마다 내 자동차로 내가 운전하는 것은 왜 계산에서 빼나” 같은 글들이 공감을 얻는다.
갈등은 연인 사이 일어날 수 있는 폭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빚어지기도 한다. 취업준비생인 문모(27)씨는 “뉴스에 데이트 폭력 사건 보도가 급증하다 보니 연애 상대가 폭력적인 언행을 하면 카톡 대화를 캡처해두거나, 통화를 녹음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했다.
성관계 전 남녀가 서로 동의했다는 기록을 남겨주는 모바일 앱도 등장했다. 이 앱은 남녀가 각자 자기 휴대전화에 설치한 뒤 실행하면 한쪽 휴대전화에 5분간 유효한 QR코드를 생성해준다. 이 QR코드를 다른 휴대전화로 촬영하면 성관계에 상호 동의했다는 기록이 앱 운영사 서버에 저장되고, 수사기관의 협조 요청 시 활용된다. 변신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교수는 “데이트 비용이나 데이트 범죄를 둘러싼 문제엔 국가가 해결해야 할 불평등 및 안전 문제가 들어 있는데, 이 갈등을 남녀 개인의 문제로만 이해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김연주 사회정책부 차장, 변희원 산업부 차장, 김경필 정치부 기자, 유종헌 사회부 기자, 유재인 사회부 기자, 윤상진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