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결성된 시민단체 ‘한국성범죄무고상담센터’에는 상담 요청이 하루 3~5건씩 접수된다. 성범죄자로 무고당했다며 대응 방법을 묻는 남성들 전화다. 이 단체의 페이스북에는 이 단체를 통해 수사기관으로부터 무혐의 처분을 받아냈다는 사례 20여 건이 경찰의 불송치 결정서, 검찰의 불기소 결정서와 함께 제시돼 있다.
한 남성은 지난 2020년 10여 년간 알고 지내던 여성과 성관계를 한 뒤 강간 혐의로 고소당했다. 남성이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받겠다고 자청했으나 여성이 ‘거짓말탐지기 조사는 2차 가해’라며 거부해 무산됐고, 경찰은 남성의 혐의가 인정된다며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보냈다. 남성은 성관계 당시 상황을 휴대전화로 녹음해둔 파일을 검찰에 냈다. 여성은 “성관계를 하게 된 과정이 기억나지 않아 강간당한 것으로 생각했는데, 녹취록을 보니 합의에 의한 관계였던 것 같다”고 진술을 바꿨다. 김대현 한국성범죄무고상담센터 대표는 “성범죄 사건은 무혐의 정황이 확실해도 남성이 불리하다”며 “성범죄 사건에서만큼은 수사기관과 사법부가 여성의 증언은 객관적 증거로 뒷받침되지 않아도 사실상 효력을 부여하고, 남성 피의자는 유죄로 추정한다”고 주장했다.
젊은 여성들이 성범죄를 당할 수 있다는 공포에 떨고 있다면, 젊은 남성들은 성범죄자로 몰려 인생이 파탄 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조선일보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조사에선 20대 남성의 45.5%, 30대 남성의 35.3%가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성희롱이나 성폭력의 가해자로 지목될까 봐 두렵다’고 답했다.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각각 29.9%에 그쳤다. 20대 남성 10명 중 6명(60.1%), 30대 남성의 절반은 ‘성범죄 수사와 재판이 남성에게 불리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답했다.
남성 이용자가 많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2017년 전북 부안의 고등학교 교사가 여학생들의 거짓 진술로 성추행 피의자로 몰리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 같은 해 대전 유성구 한 곰탕집에서 남성 손님이 여성 손님 곁을 지나가다가 신체를 만졌다는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 등이 거론된다. 여성의 무고가 밝혀져 처벌을 받았다는 기사에는 “무고죄는 무고당한 사람이 받을 수 있었던 형량의 2배는 되어야 한다” 같은 댓글이 달린다.
‘성범죄 무고에 대한 공포가 과장됐다’는 주장도 있지만, 일부 남성들은 실제 무고를 당했을 경우 대응하기가 어렵고, 혐의를 벗는다 해도 피해를 회복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한다. 남성 커뮤니티에서는 “직장 선배가 무고를 당했는데 회사 전체에 소문이 나 퇴사했다. 나중에 혐의를 벗었지만 업계에는 성범죄자란 소문이 퍼졌고 재취업도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며 “한 사람의 인생이 끝장났는데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는 글이 올라와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성범죄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에는 젊은 남성도 동의한다. 20·30대 남성의 70.1%는 ‘성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가 지금보다 강화돼야 한다’고 답했다. 이들이 반발하는 부분은 남성 전체를 성범죄의 잠재적 가해자로 보는 시각이다. 20·30대 남성의 68.0%가 ‘남성이 성범죄의 잠재적 가해자라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고 답했다.
지난 2020년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이 홈페이지에 올린 ‘잠재적 가해자의 시민적 의무’라는 영상이 대표적이다. 나윤경 당시 원장이 “왜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하느냐고 화를 내기보다는 스스로 가해자인 남성과 다른 사람임을 증명하려는 노력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발언해 논란이 됐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어린이집에서 아이들 때리는 교사는 대부분 여성인데, ‘여성들은 잠재적 아동 학대범이 될 수 있음을 늘 자각하라’고 하면 여성들도 분노하지 않겠느냐”는 격한 반응이 올라왔다.
〈특별취재팀〉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김연주 사회정책부 차장, 변희원 산업부 차장, 김경필 정치부 기자, 유종헌 사회부 기자, 유재인 사회부 기자, 윤상진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