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여학생들은 교육 현장에 여전히 성차별적 문화가 남아 있다고 했지만, 남학생들은 “양성 평등이 이뤄지다 못해 넘친다”고 반박했다. 본지가 인터뷰한 고3 남학생들은 “오히려 ‘남학생들은 성적을 깔아준다’ ‘놀기만 한다’는 편견으로 점점 주눅이 드는 게 문제”라고 했다.

조선일보·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조사에서도 10대 남성 10명 중 3명(29.7%)꼴로 ‘초·중·고교 때 차별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서울 성덕고 3학년 강모(18)군은 “중학교 체육 수행 평가 때 남자는 농구 슛을 10개 해야 1급인데, 여자는 5개만 해도 1급 주는 식으로 기준이 달랐던 건 차별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같은 학교 3학년 이모(18)군과 정모(18)군은 “선생님이 ‘남자니까 무거운 물건을 들라’고 한 것”을 차별로 꼽았다.

선거관리위원회가 고등학생(만 18세) 유권자를 위해 만든 선거교육자료. /연합뉴스

본지가 한국교총과 함께 전국 초·중·고교 교사, 대학교수 175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도 남학생들은 주로 “청소, 짐 나르기 등 힘쓰는 일은 남자만 시킨다” “남자라고 무조건 참고 양보하라고 한다” “이제는 남자가 역차별을 당한다”고 호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K를 생각한다’ 저자인 임명묵씨는 “양육 주도권이 엄마에게 있고 학교도 여교사가 다수인 데다 여학생들 학업 성취도도 높아 10대 남자들은 가정·학교에서 자신이 약자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크다”고 했다. 손지애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도 “젊은 남성들은 집안에서 목소리 큰 엄마 밑에서 자라 여자가 차별받는다는 것을 믿지 못한다”고 했다.

10대 남성들도 여성처럼 성 역할 고정관념이 가장 적은 세대다. 본지·서울대 ‘젠더의식’ 조사에서도 ‘특정 성별이 잘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답한 10대 남성은 42.4%로, 10대 여성(48.6%)을 포함해 전 세대에서 가장 낮았다. 강군은 “특정 성별이 잘할 수 있는 직업은 이제 없다”면서 “대신, 경찰 시험 체력 기준도 남녀 똑같이 하고 당당하게 ‘나도 들어왔다’ 하면 욕 안 들을 것 같다”고 말했다. ‘여자 대학의 필요성’에도 의문을 표했다. 정군은 “과거엔 여성에게 교육 기회를 주기 위해 여대가 생겼지만, 여성에게 공부할 기회가 충분히 열려 있는 요즘 굳이 필요하냐”고 했다. 이군은 “진학하고 싶은 윤리교육과가 수도권에선 대부분 여대에 몰려 있어 가고 싶어도 못 간다”고 했다.

지난 대선에서 첫 투표권을 얻은 10대 남학생들의 최대 관심도 ‘젠더 공약’(30.0%)이었다. 실제로 고3 교실에서는 ‘여가부 폐지’ 공약을 놓고 일대 토론이 벌어졌다. 충남 천안의 한 고등학교에 다니는 3학년 김모(18)군은 ‘여가부 폐지’에 찬성해 윤석열 당시 후보에게 투표했다. 김군은 “여가부는 어떤 정책을 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실효성 없는 조직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군은 “이름이 성차별적이다. ‘양성평등가족부’로 바꾸면 좋겠다”고 했다.

페미니즘에 대해서도 여학생들과 큰 인식 차를 보였다. 10대 남학생들은 ‘여성의 남성 비하·남성혐오주의’(40%), ‘여성 우월주의’(27.8%) 순으로 대답했다. 김군은 “남자 애들은 누가 마음에 안 들 때 ‘쟤 페미냐’ 하는 식으로 욕을 한다”면서 “페미니즘의 의미를 잘 모르고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이군은 “페미니스트는 양성 평등을 추구하는 건데, 우리나라에선 극단적 남혐 집단으로 변질된 탓이 크다”고 했다.

결혼에 대해선 “꼭 할 필요는 없다”고 대답했다. 정군은 “결혼해서 좋은 면보다는 이혼율이 높아지는 등 나쁜 점이 더 많은 것 같다”고 했다. 강군도 “자유롭게 살고 싶은데, 결혼하면 서로 가두는 느낌이고, 돈도 벌고 아이도 키워야 하니 책임져야 할 게 많아서 부담된다”고 했다. 본지 젠더 의식 조사에서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10대 남성은 10명 중 3명(30.7%)이었다.

〈특별취재팀〉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김연주 사회정책부 차장, 변희원 산업부 차장, 김경필 정치부 기자, 유종헌 사회부 기자, 유재인 사회부 기자, 윤상진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