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 언어는 칼날보다 날카롭다. 젠더 갈등의 전선(戰線)이 첨예해질수록 남녀는 더 다양하고 신랄한 언어로 서로를 공격한다. 갈등의 최전선인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탄생한 신조어들은 빠른 속도로 젊은 세대의 언어 습관을 잠식했다.
본지가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썸트렌드를 통해 지난 2014년부터 트위터와 인스타그램,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블로그 등에서 사용된 남녀 혐오 표현 50개의 언급 빈도를 분석한 결과 상당수 단어는 생성된 지 수개월 안에 온라인 전반으로 확산했다. 남성을 비하하는 ‘한남충’이 대표적이다. 한국 남성을 벌레에 빗댄 한남충은 ‘메갈리아’ 개설 2주 뒤인 2015년 8월 20일(2건) 처음 집계되기 시작했는데, 같은 해 12월 27일(879건) 트위터를 중심으로 언급량이 크게 늘어났다. 이후 매일 수백 번 언급되는 것을 반복하다 다음 해 5월 18일(1964건) 정점을 찍었다. 2014년부터 올해 5월 14일까지 온라인에서 ‘한남충’은 약 223만5000회 언급됐다.
지난해 처음 등장한 신조어 ‘퐁퐁남’ 역시 빠르게 확산했다. 퐁퐁남은 젊은 시절 연애 경험 없이 취업에만 몰두했던 3040 남성이 연애 경험 많은 아내를 만나 현금인출기(ATM) 취급받는 것을 조롱한 표현이다. ‘퐁퐁남’이 본격적으로 언급되기 시작한 건 지난해 10월 1일(252건)이다. 같은 달 24일(692건) 커뮤니티 언급 건수가 폭증하더니 26일(1775건)을 기점으로 언급량이 크게 늘었다. 올해 4월 2일(1842건) 정점을 찍은 퐁퐁남은 올해만 총 1만2594회 언급됐다.
본지가 선정한 대표적인 혐오 표현 50건 중 2014년부터 올해까지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한남충(223만5000회), 김치녀(215만6000회), 한녀(201만8000회), 허버허버(186만9000회), 개저씨(128만6000회) 순이었다. 올해 들어 가장 많이 언급된 혐오 표현은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당시 대통령 후보를 찍은 남성의 외모 등을 비하하는 ‘2번남(36만3000회)’이었다.
혐오 표현을 둘러싼 공방이 계속되면서 이를 부적절하게 사용한 기업이나 기관이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난해 카카오는 ‘허버허버(허겁지겁 먹는다는 의미의 신조어)’ 문구를 써 논란이 된 카카오톡 이모티콘 판매를 중단했고,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캠프에서 사법 제도 공약 보도자료에 ‘오또케’란 표현을 썼다가 책임자를 해촉하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 등장했던 ‘김여사’ ‘된장녀’ 등 원조 혐오 표현과 비교하면 최근 사용되는 언어의 수위가 높아졌다는 지적도 있다. 박진호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최근 신조어는 10~20대 중심의 남초·여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생산되다 보니 표현이 거칠어진 측면이 있다”면서 “특히 2015년 ‘메갈리아’ 사태 이후 탄생한 신조어들은 의도적으로 상대에게 혐오감과 불쾌함을 주기 위한 미러링 전략의 일환으로 등장했기에 더 공격적”이라고 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현실에서 피해를 입은 경험이 없다고 하더라도 온라인상 혐오 표현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 성별에 대한 혐오가 생길 수 있다”며 “남초·여초 커뮤니티의 군중심리로 그 혐오가 더욱 증폭되기도 한다”고 했다.
〈특별취재팀〉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김연주 사회정책부 차장, 변희원 산업부 차장, 김경필 정치부 기자, 유종헌·유재인·윤상진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