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들에게 참 좋은 아버지였어요. 아침 식사도 손수 차려줄 정도로 좋은 분이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을 당하실 것이라곤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9일 오후 6시 대구 중구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A씨는 이 같이 말했다. 그는 이날 대구 수성구 범어동 변호사 사무실 화재 사고로 사망한 B 사무장과 동서지간이라고 했다. A씨는 “B 사무장과는 주말에 만나 식사도 하고 골프 라운딩도 치는 사이였다”며 “평소 만나서 누군가 괴롭힌다거나 일이 힘들다는 말은 없었고, 항상 밝은 모습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사고가 닥치니 황당하다”고 했다. A씨에 따르면 B 사무장은 슬하에 학생인 두 딸을 두고 있다. A씨는 “아이들에게는 아직 사고 소식을 전하지 못했다”고 했다.
경찰과 소방 등에 따르면 화재는 이날 오전 10시 55분쯤 7층짜리 법조타운 건물 2층에서 발생했다. 이 사고로 B 사무장을 비롯해 7명이 숨졌고, 49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화재로 사망한 이들 가운데에서는 불을 지른 것으로 파악되는 용의자 50대 남성도 포함됐다.
이날 오후 4시쯤 사망자들의 시신이 옮겨진 경북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유족과 지인들이 속속 들어서기 시작했다. 유족들은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오열하며 들어섰고, “OOO씨 지인인데 사망하신 게 맞냐”며 묻는 지인도 있었다. 사망자 중 한 명과 20년 동안 알고 지냈다는 한 지인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점심을 먹자고 올렸는데 계속 답이 없었다”며 “화재가 났다는 뉴스를 보고 설마 하는 마음이었는데, 이렇게 장례식장까지 오게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사망한 이들의 빈소는 2층에 차려질 예정인 가운데, 유족들은 부축을 받고 비틀거리며 힘겹게 계단을 오르거나, 계단에 주저앉아 한참을 멍하니 있기도 했다. 사망한 이들 중에는 사촌 형제 관계인 변호사와 사무장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먼저 장례식장에 도착한 변호사의 아내는 “우리 남편과 연락은 안 되지만 분명 살아있다”고 하다가 경찰이 보여준 사망자 사진을 확인하고 털썩 주저앉았다. 이어 사무장의 아내가 도착하자 수성구 관계자는 “얼굴이 닮은 두 분 모두 사망하셨다”고 했다. 두 사람은 “어떻게 우리가 여기서 만날 수 있느냐”며 서로 부둥켜 안고 오열하기도 했다.
이날 장례식장을 방문한 이석화 대구지방변호사협회장은 “돌아가신 분들이 무슨 잘못이 있어서 이런 일을 당하신 것이 아닌데, 소송에 불만을 품었다고 상대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가서 해코지하는 것을 보며 앞으로 어떻게 변호사들이 활동해야 할지 무섭다”며 “장례는 변호사회 합동장으로 치르는 게 어떻겠냐고 유족들께 제안드렸고, 대구의사회와 협의해 유족들 심리 상담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 협회장은 “이런 일이 재발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소송에서 패소한 경우 최소한의 사회보장 제도가 국가 차원에서 만들어져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이번 화재 사건은 재판 결과에 앙심을 품은 것으로 추정되는 용의자가 방화를 저지르면서 발생했다. 현장에 있던 CC(폐쇄회로)TV를 보면, 용의자가 송사의 상대편 변호인이었던 배모 변호사 사무실로 들어간 지 30초도 되지 않아 굉음과 함께 연기가 피어올랐다. 배 변호사는 지방 재판 출장으로 화를 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 변호사는 본지 통화에서 “재판 결과가 나온 이후 용의자가 따로 항의를 하러 온 일은 없었다”며 “무슨 사정으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알 수 없어 답답하고, 한순간에 직원들이 이런 사고를 당하게 돼 경황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