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후 대전 유성구 덕명동 유성골프장 인근엔 초록색 울타리가 둘러쳐진 공터가 있었다. 공부(公簿)상 이 땅은 ‘답(논)’이지만, 울타리 안에서 논 농사 흔적은 찾기 어려웠다. ‘개망초’라 불리는 들꽃이 무성했고, 군데군데 얕게 파놓은 고랑이 있었지만 작물은 잘 보이지 않았다.
대신 울타리 한쪽에는 목재 덱(Deck) 위에 세워진 남색 2층 건물이 보였다. 2층 테라스에는 차를 마실 수 있는 테이블과 테이블용 차양막이 놓여있었다. 건물 밖으로는 에어컨 실외기가 있었고, 덱 한쪽 구석에는 바비큐 그릴도 놓였다. 울타리 정문 입구에서 이 덱으로 향하는 진입로에 깔려 있던 건 일정한 크기의 자갈이었다. 진입로 좌우로는 어른 무릎높이의 예쁜 조명등도 설치돼 있었다.
겉으로 봐서는 ‘별장’으로 불러도 전혀 손색이 없을 이 건물을, 땅 주인은 ‘농막’이라고 했다. 농지에 농막을 짓는 것은 합법, 별장을 짓는 것은 불법이다. 이 땅의 소유주는 한상혁 방통위원장이다.
한 위원장은 2020년 1월 작고한 부친으로부터 이 땅을 상속받았다. 총 1445㎡(약 438평) 규모의 농지 2필지다. 한 위원장은 1남4녀 가운데 장남으로, 한 위원장과 동생들은 각각 이 농지의 20%인 289㎡(약 88평)씩 소유하고 있다.
몇 해 전부터 이곳 지역 주민들 사이에선 ‘이 농지가 농사에 사용되지 않고 별장처럼 사용되는 것 같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한 위원장은 이에 대한 조선닷컴 질의에 “농막”이라고 했다.
농막이란 농지법 시행규칙상 ‘농작업에 직접 필요한 농자재 및 농기계 보관, 수확 농산물 간이 처리 또는 농작업 중 일시 휴식을 위해 설치된 가설건축물’을 뜻한다. 연면적은 ‘20㎡ 이하’여야 한다.
조선닷컴이 현장을 찾아가 봤다. 건축물은 너비 약 7m, 폭 2m 남짓이었다. 2층까지 포함해 계산하면 연면적이 약 30㎡였다. 여기에서 테라스 면적을 빼면 20㎡ 안팎으로 추정됐다. 농막의 기준을 빠듯하게 맞춘 것으로 보였다.
건축물 아래에는 가로 7m 세로 5.5m, 정도의 덱이 깔려있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농지법 위반 관련 현장 점검에 앞서 배포한 자료집을 보면, ▲덱 ▲진입로 설치 ▲잡석을 이용한 토지 포장 ▲주차장 조성 등을 농지법 위반 사항으로 적시해놨다.
그 위반사항 대부분을 한 위원장의 ‘농지’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농지를 농업 생산 또는 농지 개량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행위와 농수산업 연구시설, 농업인의 편의시설, 농업인 주택, 군사시설, 문화재, 공공시설 외엔 다른 용도로 사용했다 적발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이 처해진다.
한 위원장은 조선닷컴의 취재 요청에 “농지 관련해서 별로 말씀 드리고 싶지 않다”며 “농막이다. 동생들이 가져다 놔서 난 잘 모른다”라고 했다.
건축업계 관계자는 “농막은 건축법에 따른 허가가 필요하지 않고, 단순히 신고만 하면 되기에 최근 농지나 밭에 별장 형태로 짓는 사람이 많다”며 “아예 농막 제조업체도 생겨났다. 2층을 다락이라며 복층 형태로 짓는 등 규제를 피해 허용 면적인 연면적 20㎡에 꽉꽉 눌러 담은 ‘별장형 농막’이 수천만원에 거래되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