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와, 나처럼 하면 1시간 만에 1억 이상 벌 수 있거든?”

14일 새벽 1시쯤, 유튜브의 한 라이브 방송에서 한 남성이 컴퓨터를 켜놓고 온라인 ‘슬롯’을 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슬롯은 돈을 넣고 버튼을 누르면 그림들이 위아래로 돌아가는데, 모든 칸에 같은 그림이 나오면 종류에 따라 상금을 주는 도박이다. 이 유튜버가 잇따라 몇 번씩 그림을 맞추자, 30분 만에 투자금 1만5000원이 700만원으로 불어났다. 이 과정을 6000여 명이 접속해 지켜봤다. 채팅창에는 “축하해요!” “나도 저렇게 벌고 싶다”는 글이 쉬지 않고 올라왔다. 이 유튜버는 자기가 소개해주는 도박 사이트에 가입하면 쉽게 돈을 딸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 이 도박 사이트에 가입하려면 최소 10만원 이상을 입금해야 했다.

지난 14일 오전 1시쯤 자기가 슬롯 도박을 하는 것을 생중계하던 유튜버가 자신이 700만원을 딴 것 같은 화면을 보여주고 있다. /유튜브

대전 유성구에 사는 강모(26)씨는 이런 도박 방송을 보고 게임을 시작했다가 4개월 만에 빚 1억원이 생겨 작년 말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그는 “한번 계좌에 쉽게 목돈이 찍히는 걸 보면 정말 그만두기 힘들다”고 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런 유튜버 대부분이 불법 도박 사이트에서 돈을 받고 대신 사람을 모아주는 것으로, 조작된 프로그램으로 쉽게 대박을 터뜨리는 것처럼 꾸민 속임수”라고 했다. 하지만 유튜브에는 ‘슬롯’ ‘바카라’ 등 도박 종류를 검색하면 나오는 유사한 라이브 채널이 수십 개나 있고, 방송마다 수천 명이 모여있기 일쑤다. 신원 확인 절차도 없어 미성년자도 마음만 먹으면 접속할 수 있다.

젊은 층이 많이 사용하는 유튜브 라이브 방송뿐만 아니라 더 어린 청소년들이 많이 사용하는 동영상 플랫폼 ‘틱톡’까지 대형 온라인 플랫폼을 이용해 손쉬운 ‘한탕’을 꿈꾸게 유도하는 신종 수법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플랫폼 대부분이 해외에 기반을 두고 있어 경찰이 단속이나 수사를 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슬롯 방송과 비슷한 시간, 다른 유튜브 방송에서는 1000여 명이 실제 해외에서 사람이 하는 바카라 도박 생중계를 보고 있었다. 바카라는 두 사람이 참여하는데, 각자가 가진 카드 2장 숫자 합이 9에 가까운 사람이 이기는 도박이다. 이용자들은 화면에 등장하는 사람이 딜러와 승부를 벌여 이길지를 놓고 돈을 건다. 다른 사람을 이용해 도박을 한다고 해서 ‘아바타(온라인에서 자신을 대신하는 캐릭터) 바카라’라고 불린다. 돈을 걸고 도박에서 이겨도 판돈만 챙기고 잠적하는 사례도 많다.

또 길이가 짧은 동영상이나 라이브 방송으로 10대 사이에서 인기인 온라인 플랫폼 ‘틱톡’에서는 청소년을 타깃으로 한 도박도 잇따라 나오고 있다. 특히 바카라나 포커 대신 규칙이 상대적으로 단순한 룰렛이나 뽑기를 하도록 유혹하는 경우가 있다. 틱톡 방송에서 일정액을 입금하면 뽑기에 참여할 수 있게 하는데, 1등이 뽑히면 건 돈의 10배, 2등이면 5배를 돌려준다는 식이다. 경기 고양시에 사는 김모(47)씨는 “열일곱 살인 아들이 한 달 300만원을 틱톡 도박에 써서 이대로 뒀다가 큰일 나겠다 싶어 휴대전화를 아예 없애버렸다”고 했다.

지금도 검색 몇 번만 하면 도박 방송 등에 쉽게 접속할 수 있다. 경찰은 유튜브나 틱톡 등 대형 온라인 플랫폼은 모두 글로벌 기업이 운영해 국내에서 수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불법 콘텐츠를 내보낸다고 유튜버 같은 이용자 정보 등을 요구해도 “개인 정보라 곤란하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제때 협조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사이버수사대 경찰 등이 직접 온라인 방송에 접속해 ‘온라인 잠복’을 하며 증거를 수집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한다. 경찰이 포착한 사이버 도박 사건은 2018년만 해도 연간 3000여 건이었지만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5000건 안팎으로 증가세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경찰이 실시간으로 인터넷 도박범을 추적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이 시급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