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구에 있는 한 불꺼진 A빵집. 한 남성이 테이블 위에 놓인 빵들을 만져보더니 하나를 집어 입에 넣는다. 이후 이것저것 집더니 본격적으로 빵들을 먹기 시작한다.

레몬 머핀, 초코칩 쿠키, 에스프레소 시나몬 머핀, 레몬파운드, 당근케이크, 초콜릿케이크 등...

이 남성이 먹은 빵과 케이크 목록이다. 빵 먹방은 무려 4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제서야 빵집에 온 이유가 생각났는지 계산대로 이동해 돈통을 열고 현금을 훔친 뒤 달아났다.

A빵집에서 4시간동안 빵 먹은 남성 영상 캡처/YTN

이 사건은 3년 전인 2019년 6월7일에 벌어졌으나, 최근 온라인상에서 다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유는 인스타그램에 생긴 새로운 ‘고정’ 기능 때문이다. 과거 인스타그램 게시물을 누른 뒤 ‘페이지 상단에 고정’을 선택하면 가장 최신 게시물로 등록할 수 있는 기능이다.

A빵집 주인인 송성례(29)씨는 최근 이 고정 기능을 이용해, 3년 전 사건 CCTV 영상을 인스타그램 피드 최상단에 배치했다. 이를 본 네티즌들이 “현대판 장발장”이라며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퍼뜨렸고, 다시 화제를 모았다.

2019년 6월7일 A빵집에서 4시간 동안 빵 훔쳐 먹은 남성/A빵집 송성례 대표 인스타그램

송씨가 기억하는 그날은 이랬다.

송씨는 20일 조선닷컴에 “6월7일 출근했는데, 가게 주변에 소주병이 나뒹굴고 있었다. 그때부터 쎄했다. 그러고 나서 가게 안으로 들어갔는데 케이크가 하나도 없더라. 전날이 제 생일이어서 폐기되는 빵과 케이크를 정리하지 않고 직원들과 ‘다음날 치우자’라 하고 퇴근했었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돈통을 열어봤는데 아무 것도 없더라. 112에 신고했고, 경찰과 CCTV를 확인했다”라고 했다.

CCTV를 본 송씨와 경찰들은 없어진 돈 보다 4시간 동안 빵 먹는 남성 모습에 빵 터졌다. 송씨는 “정말 4시간 동안 빵만 드시더라. 처음에 배가 고프셨는지 들어오셔서 빵 하나를 먹고, 둘러보다가 하나를 더 먹더라. 그리고 또 다시 케이크 3~4조각을 먹고. 계산해 보니 그분이 먹은 조각케이크만 8조각이다. 빵들도 남겨뒀었는데 거의 남은 게 없었다”고 했다. 이어 “12시에 시작한 먹방은 새벽 4시에 끝났다. 다 먹고난 후 계산대로 가더니 돈통에서 현금 15만원을 빼서 나가더라”고 덧붙였다.

송씨는 이날 사건이 절대 잊을 수 없는 ‘생일선물’이라고 했다. 송씨는 “15만원을 잃었지만 크게 화나는 건 없었다. 오히려 뿌듯했다. 그때 가게에 있던 빵과 케이크는 모두 내 레시피로 만든 건데, 그분이 그렇게 맛있게 먹어주니 큰 힘이 되더라. 생일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래서 선처해줬다”고 말했다.

송씨는 이 사건을 가게 홍보에 적극 활용했다. 인스타그램에 사건 당시 CCTV 영상을 공개한 뒤 “처음엔 속상했지만 가면 갈 수록 시트콤이라 시간이 지나도 웃픈 추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라고 후기를 남겼다. 또 이 남성이 먹은 빵과 케이크 목록도 공개했다. 그리고 이를 ‘도둑의 PICK’이라고 명명했다.

A빵집 송성례 대표가 2019년 6월7일 사건 이후 인스타그램에 올린 '도둑의 픽' 빵 목록

게시물을 본 네티즌들은 유쾌한 송씨 모습에 열광했다. 해당 게시물에는 “빵맛이 너무 궁금해서 가봐야겠다”, “도둑도 인정한 빵집”, “100% 순수 리뷰다” 등 무려 700개가 넘는 댓글이 쏟아졌고, 실제로 손님과 매출이 급증했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송씨는 가게를 넓히고, 분점도 냈다. 사건 당시 6명이었던 직원은 2배 늘어 현재 13명이다.

송씨는 “너무 감사하게도 이 사건이 매년 회자된다. 저희 빵집 이름은 몰라도 온라인상에서는 ‘도둑픽 빵집’이라고 하면 다들 아시더라. 실제로 요즘에도 도둑픽 빵 찾는 분들이 꽤 있다. 그날 이후, 무엇이든지 내가 마음만 먹으면 부정적인 일도 선물이 되는구나 생각하며 살고 있다”라며 웃었다.

A빵집 송성례 대표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인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