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뉴스1

지난 21일 시·도경찰청장급인 경찰 고위직 인사가 발표 2시간 만에 번복되는 초유의 일이 벌어져 경찰 안팎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특히 행정안전부 장관 직속 경찰제도개선자문위원회가 경찰을 통제·관리하는 내용의 권고안을 발표한 날에 이런 일이 벌어져, 가뜩이나 자문위원회 발표 내용에 불만을 갖던 일선 경찰들의 반발을 더 부추기고 있다는 반응이 나온다.

경찰청은 21일 오후 7시쯤 치안감 28명 규모의 보직 내정 인사를 발표했다. 국가수사본부 수사국장 등 경찰 상층부를 교체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이 인사는 오후 9시30분쯤 번복됐다. 28명 중 7명의 보직이 바뀐 채였다.

인사 발표 난 21일 밤에 어떤 일이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미국 출장에서 귀국한 뒤인 21일 오후 6시 15분 경찰은 행안부 치안정책관으로부터 치안감 보직 내정안(案)을 받았다. 1시간쯤 뒤 경찰은 경찰 내부망에 이 내용을 올리고, 언론에도 알렸다. 하지만 오후 8시 38분 치안정책관이 경찰청 인사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와 “잘못된 내용이 발표됐다”고 했다. 그 뒤 경찰은 오후 9시34분 7명의 보직을 바꿔 다시 인사를 발표했다. 대통령 결재가 최종적으로 난 것은 오후 10시쯤이었다.

인사안이 번복되자, 경찰 안팎에서는 행안부나 대통령실에서 발표 후에 몇몇 인사를 바꾸라고 외압을 넣은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용산 대통령실 관계자는 22일 “대통령은 경찰 인사안을 수정하거나 변경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이 사태의 시작은 행안부 치안정책관이 애초에 경찰에 치안감 보직 내정안을 보낼 때 최종안이 아니라 초안을 잘못 보낸 것이었다. 복수의 정부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이상민 장관은 지난 15일 출국하기 전에 인사안을 짜놨다고 한다. 이 장관이 21일 오후 귀국하자, 행안부 치안정책관은 경찰청에 인사안을 보내며 “보고 양식에 맞춰서 대통령실과 협의해 결재를 올릴 준비를 하라”는 취지의 말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인사안은 최종안이 아니라 잘못 전달된 초안이었다. 거기다 치안정책관이 전달한 것과 달리, 경찰이 대통령실과 결재를 위한 협의를 하기 전에 발표부터 해버리면서 사태가 커졌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왜 대통령실과 협의하지 않고 발표부터 했는지 의아하다”면서 “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결재도 안 났는데 발표를 왜 했는지 모르겠다고 한 것도 이런 점 때문”이라고 했다. 총경 이상 경찰공무원 인사는 경찰청장의 추천을 받아 행안부 장관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이 절차가 끝나기 전에 발표가 나갔다는 지적이다.

반면 경찰은 정부에서 명단이 오면 내정된 것으로 보고 발표하는 관행에 따른 것뿐이라는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은 그동안 청와대 민정수석실 등과 협의해 내정이 되면 발표를 하고, 그 다음에 공식 결재를 받아 인사 발령을 내왔다”며 “앞으로는 ‘결재 후 발표’로 바꿔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행안부에서 왜 최종안이 아닌 것을 보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경찰 안팎에서는 이번 사태가 경찰과 행안부 간의 불신을 보여준다는 반응도 나온다. 경찰은 “정부가 경찰을 길들이려 한다”고 의심하고, 행안부는 경찰 견제가 필요하다고 보는 시각차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 후 민정수석실이 없어지는 등 인사 시스템이 달라져 생긴 혼란상이 반영됐다는 지적도 있다. 또 일각에선 최근 인사에서 경찰청장의 인사 추천권이 무시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하지만 경찰청 관계자는 “이번 인사에서 핵심 보직 등 경찰에서 희망했던 원안이 대부분 반영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