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아 부모들은 말합니다. ‘아이 혼자 두고는 죽지도 못한다’고. 말도 안됩니다. 부모가 없어도 아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죠. 제가 평생을 자폐 장애인들에게 직업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하는 이유입니다.”

8일 서울 강남구 래그랜느보호작업장을 운영하는 남기철 사단법인 밀알천사 대표가 포즈를 취했다. 남 대표 뒤편 그림은 자폐성 장애인 직원이 그린 작품이다. /김지호 기자

남기철(69) 사단법인 밀알천사 대표에겐 올해 마흔살 아들 범선씨가 있다. 자폐성 장애 2급이다. 남 대표는 인생 절반을 아들의 자립을 목표로 달렸다. 물론 아직 멀었다.

아들 범선씨는 타인과 1~2분이상 소통하기 어려운 상태다. 상대방 말을 따라하거나 묻는 말에 짧게 대답만 한다. 가끔은 자기 손을 깨물거나 차가 달리는 차도에 뛰어든다. 길가다 아무데다 용변을 본 적도 있다. “언제가 가장 힘드냐”고 물으니, 그는 “매일 매일이 힘들다”고 했다.

남 대표는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삼성전자에서 10년 근무했다. 1989년 전자부품을 거래하는 무역회사를 차려 돈도 꽤 벌었다. 강남구 일원동에 5층짜리 건물도 있다. 하지만 아들의 자폐를 알고부터 삶의 목표가 달라졌다. 27년 전부터 자폐성 장애인들 모아 ‘주말 산행’을 시작했고, 2010년엔 이들이 일할 회사도 차렸다. 최근엔 자립공동체를 꿈꾸며 경기도 포천에 농토도 마련했다. 그를 만나 자폐성 장애인들의 현실을 들어봤다.

- 다정다감한 아버지 모습을 예상했었다. 무뚝뚝해 보이신다.

“가끔 ‘하루 만이라도 직접 데리고 살아보라’는 말을 한다.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 안타깝고 속상한 것보다는 늘 불안하다. 많이 사랑하는 만큼 현실적으로 도움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산다.”

- 위험한 일이 자주 발생하나. 조금씩 나아지진 않는가.

“6살 때 교회에서 불이 나 아들이 새까맣게 그을린 채 구조됐다. 기도가 막혀 죽을 뻔 했다가 살아났다. 강원도에서 독사에 물려 어린애 팔뚝이 어른 허벅지 만큼 부풀러 오른 적도 있었고, 강남구 대모산 등산 때는 실종돼 몸이 깡깡 언채로 어두운 밤 집을 찾아오기도 했다. 가장 답답한 건 좋아지지 않는다는 점, 아니 좋아지는 속도가 느리다는 점이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고집이 세지고, 밤새 한숨도 안자고 집안을 돌아다니거나 자해를 하는 일도 잦아졌다.”

- 가족들이 힘들겠다.

“한계라는 게 있다. 밤새 안자고 있으면 가족들도 불안해서 잠을 못잔다. 말 그대로 24시간 케어다. 보통 아빠들은 돈 벌러 나가고, 엄마들이 돌보는데 아이들이 클수록 체력에도 한계가 생긴다. 그래서 가족에게 휴식 시간을 줄 수 있는 학교와 직장이 필요하다. 자폐인들은 고교 졸업 후 갈 곳이 없다. 늙은 부모와 함께 다시 집에 갇힌다. 요즘은 직업교육을 하는 전공과 과정 2년이 추가돼 22살 정도까지는 다닐 수 있는데, 근본적으로는 직업을 갖게 해 자립할 수 있는 쪽으로 유도해야 한다.”

- 직장을 다니는 게 가능한가. 업무능력이 떨어지지 않나.

“물론 일반인처럼 일할 수는 없다. 단순한 작업을 반복적으로 하는 정도다. 그것도 긴 시간 교육과 훈련을 해야 가능한 일이다.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속 우영우 같은 인물은 아직까지 들어보지도, 만나보지도 못했다. 자폐성 장애인들은 가족이 아니면 사회가 책임져야 한다. 그래서 래그랜느처럼 일도 하고, 보호도 받는 시설이 많아져야 한다고 소리치는 것이다.”

-자폐인을 위한 직장, 들어본 적이 별로 없다.

“래그랜느처럼 자폐인들만 일하는 곳은 거의 없다. 대부분 지적장애와 자폐 등 발달장애인이 섞여있는 형태다. 그것도 종교단체나 큰 기업에서 사회공헌 측면에서 운영하는데, 불필요한 규제가 너무 많아 나처럼 개인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기가 어렵게 돼 있다. 자폐아 부모들 중에도 ‘자폐인 직장’에 뜻이 있는 분들이 있지만 다들 포기하기 마련이다. 참 답답한 현실이다.”

8일 오전 서울 강남구 래그랜느보호작업장에서 자폐성 장애인들이 제과제빵 작업을 하고 있다. /김지호 기자

남기철 대표는 빵과 쿠키를 만드는 보호작업장 ‘래그랜느’가 지나온 길을 설명하며 불필요한 규제에 대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지분구조가 비민주적? 래그랜느는 2010년 5월 자본금 3억5000만원의 주식회사로 설립했다. 남 대표의 무역회사가 거의 100% 출자했다. 첫 문턱은 사회적기업 인증이었다. 예비 기간 2년을 거쳐 고용노동부로부터 본인증을 받으면, 3년 동안 전문 기술자 인건비 50~80%를 지원받는다. 2011년 첫 신청을 했더니, 지분구조가 민주적 의사결정이 어려운 구조라는 이유로 탈락했다. 남 대표는 당시 공무원들에게 “적자 나는 장애인 기업에 누가 투자하느냐. 지분을 모두 팔테니 투자자 좀 구해달라”고 항의했다. 이듬해 가을 두번째 도전 끝에 인증을 받아냈다.

#자폐인 회사에 점자블럭? 사회적기업 지원이 끊어진 뒤 2016년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인 보호작업장 승인을 받는 과정도 힘겨웠다. 지방자치단체가 승인하는 보호작업장은 최저임금 적용 제외, 직업 훈련 교사 인건비, 운영비 등을 지원해준다. 특히 자폐 장애인들의 재활과 보호도 가능하다.

하지만 승인을 받으려면 운영을 맡을 비영리법인이 필수적이다. 남 대표가 사단법인 ‘밀알천사’를 만든 이유다. 자격조건엔 개인도 가능하다고 돼 있지만 ‘사유화’ 우려로 실제로는 승인을 꺼린다고 한다. 자폐인들만 일하는 작업장인데도 건물 전체에 시각·청각 장애인 편의시설을 모두 갖춰야 했다. 설치비용만 1억원 들었다.

#분점도 새 편의시설 갖춰야? 래그랜느는 좀 더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송파구에 제2작업장을 만들어 LED조명 조립 공장을 시도했다. 그러나 작업장 관할 지자체가 강남구가 아닌 송파구라서 승인을 새로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려면 제2작업장이 있는 건물도 장애인 편의시설을 새로 갖춰야 했다. 다시 강남구에 분점 등록을 문의했으나 거부당했다. 결국 제2작업장은 두달 만에 문 닫았다. 시설 투자비 1억원만 날렸다.

#스트레스 높이는 해썹인증? 2020년엔 식품안전관리 인증(HACCP)이 의무화돼 40여평 작업장에 8000만원을 들여 별도 칸막이 시설을 만들었다. 칸막이형 공간은 자폐 장애인들에겐 스트레스를 높이지만 식품 안전을 위한 일이니 어쩔 수 없었다.

서울 강남구 래그랜느보호작업장 운영을 맡고 있는 남기철 사단법인 밀알천사 대표. 그는 자폐 장애 2급인 아들 범선이를 세상 밖으로 데리고 나오기 위해 2010년 이 회사를 만들었다. /김지호 기자

- 법과 제도, 행정이 어떤식으로 바뀌어야 하나.

“탄력적으로 변해야 한다. 자폐성 장애인들 작업장에 휠체어 경사로와 점자 블럭이 왜 필요한가. 전체를 아우르기 위해 법이 투박하게 만들어졌더라도, 정부나 지자체가 장애 특성에 따라 유연하게 해석해줘야 한다. 다들 ‘형평성 때문에 안된다’ ‘다른 단체들이 반발한다’면서 발을 뺀다. 국회의원도, 대통령 후보도 선거 때만 반짝 관심을 갖고 만다.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정부를 거쳐 현 정부까지 왔지만 상대적으로 숫자가 적은 자폐성 장애인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은 없었다.”

지난해 기준 서울시에 등록된 장애인은 39만2123명, 이중 자폐성 장애인은 6855명으로 1.7% 수준이다. 장애인 직업재활시설은 모두 105곳으로, 대부분 종교단체나 사회복지법인, 사회적협동조합 등이 운영하고 지자체가 위탁 운영하는 곳도 있다.

- 가족이 없는 자폐성 장애인들은 앞으로 어떻게 되나.

“자폐성 장애인들은 나이들수록 건강이 급격히 악화된다. 검진 비용도 많이 들고, 치료 받기도 어렵다. 쇠약해지면 장애인요양시설이나 정신병원 등 이른바 수용시설로 가게 될 것이다. 자폐의 특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는 복합 시설로 가서 강제 수용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을 거다.”

- 검진이나 치료가 어렵다는 게 무슨 말인가.

“발치를 예로 들어보자. 일반인은 의료보험 적용을 받아 5만원 정도면 가능한데, 자폐성 장애인들은 전신마취를 해야 한다. 가만 있지 못하고 몸부림치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의료보험 적용이 안돼 100만원이 넘게 든다. 치료도 종합병원이 아니면 어렵다. CT나 MRI 등도 자폐인들에겐 불가능한 검사다. 단순한 X-ray 촬영도 ‘가슴 붙이고 숨 참으세요’라는 지시를 이해 못해 몇 십분씩 애를 먹기도 한다.”

- 그래서 자립공동체를 계획하고 있는 것인가.

“오래 고민해 왔다. 우리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가족 없이도 살아갈 수 있을까. 농사가 가장 적응하기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작업이 단순하고, 수확의 기쁨도 맛보고, 가공 식품을 만들어 팔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2011년 아들 범선이가 10년 넘게 받은 월급을 모아 경기도 포천에 임야 1000여평을 샀고, 그걸 깎고 다듬어 밭과 과수원을 만들었다. 월 2차례 래그랜느 직원들을 포천에 데려가 농촌체험을 시키고 있다. 모두들 너무 좋아한다. 그 모습을 보면 범선이도 친구, 동료들과 함께 서로 도와가며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