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호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경북 포항시 인덕동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숨진 희생자 7명의 빈소가 차려진 포항시의료원 장례식장은 7일 곳곳이 울음바다였다. 어머니를 각별히 챙긴 아들, 아들의 반찬을 걱정한 어머니 등 평범한 이웃이었던 이들의 사연이 하나둘 알려지면서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희생자 중 가장 어린 중학생 김모(14)군은 비바람이 몰아치던 6일 새벽 지하 주차장에 차를 빼러 가는 어머니가 걱정돼 따라 나섰다가 변을 당했다. 여느 사춘기 중학생과는 다르게 어머니와 사이가 각별해 친척들은 그를 ‘엄마 껌딱지’라고 불렀다. 하지만 어머니와 김군의 생사는 엇갈렸다.

7명의 소중한 목숨이… - 7일 오후 태풍 힌남노의 영향으로 침수돼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 경북 포항의 한 아파트 지하 주차장을 소방대원들이 둘러보고 있다. 이 주차장은 지난 6일 오전만 해도 물이 가득차 있었지만 배수 작업을 하면서 6일 밤부터 실종자들이 발견됐고, 7일에는 물에 잠겨있다 곳곳이 망가진 자동차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연합뉴스

7일 빈소에서 만난 김군의 아버지는 “어깨가 좀 불편한 아내가 ‘너라도 살아야 한다’며 아들을 먼저 내보냈다고 하더라”며 “아들이 ‘그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갔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빗물이 차올라 차 문이 열리지 않자 밖에 서있던 아들이 차 문을 열어 줬다고 한다”며 “아내는 수영도 하지 못해 도저히 나갈 자신이 없어 다른 사람들과 함께 아들을 먼저 보냈다고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출구를 향해 나갔던 아들은 결국 주검으로 돌아왔고, 배관 위에서 버틴 어머니 김모(52)씨는 6일 밤 9시41분쯤 약 15시간 만에 극적으로 구조됐다. 병원에 입원 중인 김씨는 자식을 잃었다는 소식에 매우 힘들어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빈소에는 김군과 친했던 동갑내기 친구 6명이 오전 10시부터 저녁 늦게까지 자리를 지켰다. 친구 정모(14)군은 “(김군은) 주말이면 어머니와 드라이브를 가거나 교회 예배를 드리러 갔다”고 했다. 다른 친구 최모(14)군도 “(김군은) 엄마랑 같이 다니는 걸 좋아하는 착한 성격이었다”고 말했다. 김군이 어머니를 각별히 챙긴 건 어머니가 혈관 질환으로 평소 몸이 안 좋았기 때문이라는 지인도 있었다.

3남매 중 막내인 김군은 격투기와 축구, 떡볶이를 좋아하는 중학교 2학년생이었다. 친구 정군은 “장난기도 많고 다투기도 했던 친구이지만 마음은 따뜻한 친구”라며 “지난주 내가 아팠는데 ‘힘내라’는 메시지를 보내 위로했다”고 말했다.

◇유학도 포기하고 홀로 어머니 모시던 아들

이번 참사로 숨진 홍모(52)씨는 결혼도 하지 않고 혼자 20여 년째 홀어머니를 모시며 살아온 착한 아들이었다. 이날 빈소에서 만난 홍씨의 동생 홍모(45)씨는 “형은 20여 년 전쯤 동국대 일문학과를 졸업하고 바로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 싶어 했지만 장남인 데다 집안 형편 때문에 가지 못했다”고 했다. 홍씨 아버지는 13년 전 암으로 숨졌다. 이후 홍씨는 홀로 모친을 모시며 살았다고 한다. 어머니는 현재 문화재 발굴 조사 관련 일을 할 정도로 건강이 좋다고 했다. 동생 홍씨는 “형은 일주일에 두세 번씩 어머니를 모시고 장을 보러 같이 갔고, 음식 하나를 사도 어머니와 나눠 먹을 정도로 각별한 모자 사이였다”고 했다. 그는 “지금도 집안에서 형을 밀어주지 못한 게 가장 한이 된다”고 했다.

◇형 차 빼러 갔다가 변 당한 20대 동생

서모(22)씨는 경북경찰청 독도경비대 소속인 형의 차가 물에 잠길까 봐 급하게 차를 빼러 갔다가 변을 당했다. 그는 지난 4월 해병대 전역 이후 아르바이트를 하며 취업을 준비해 온 성실한 아들이었다. 이날 빈소에서 만난 한 유가족은 “수영을 못하는 애도 아니고”라며 울먹였다. 말을 아끼던 서씨 아버지는 지친 표정으로 한동안 빈소에 주저앉아 말없이 아들의 영정 사진만 바라봤다. 서씨의 친구가 조문을 와 큰 소리로 울자 아버지는 친구 등을 토닥이며 껴안았다. 서씨의 아버지는 전날 사고 현장에서도 지하 주차장 진·출입로를 오가며 구조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구조대원들에게 “20대 남자는 없습니까”라고 물으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당시 아버지가 신은 신발은 흙탕물로 범벅이 돼 있었다. 서씨의 작은아버지는 “사교성이 좋아 친구도 많았다”고 했다.

◇성실했던 부부 동시에 참변

부부가 동시에 참변을 당한 남모(71)씨와 권모(65)씨의 자녀들은 한꺼번에 부모를 잃었다. 이날 빈소에서 만난 아들 남모(41)씨는 전날 뉴스를 보고 황급히 사고 현장으로 달려왔다고 했다. 그는 “부모님 댁에 왔는데 옆집 아저씨가 부모님 모두 지하로 가는 걸 봤다고 해 가슴이 철렁했다”고 했다. 남씨는 “집에 차가 두 대라 두 분 모두 차를 빼러 지하 주차장에 갔다가 사고를 당한 것 같다”고 했다. 전날 사고 현장에선 부부의 딸(38)이 구조대원들에게 “우리 엄마 아빠 살려주세요”라며 오열하기도 했다.

이 남매에게 어머니는 평생을 주부로 산 가정의 울타리였고, 아버지는 퇴직 후에도 지게차 운전을 배워 인근 공단에서 일한 성실한 가장이었다. 고인의 남동생 남모(64)씨는 “지난달 21일에도 형님과 경북 문경에 있는 부모님 산소에 같이 가서 벌초했다”며 “불과 며칠 전까지 내 앞에 있던 사람이 이렇게 가버려 황망하다”고 했다.

◇혼자 사는 아들 밥 잘 먹나 걱정하던 엄마

허모(54)씨는 혼자 사는 아들이 행여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걱정하던 어머니였다. 평생 주부로 살아온 그는 회사원인 남편과 함께 딸 둘, 아들 하나를 살뜰히 키웠다. 아들 박모(28)씨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 중이다. 박씨는 “일주일 전 엄마랑 통화했을 때 잘 지내지 아들, 사랑한다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난다”며 “제가 혼자 있다 보니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늘 걱정이셨다”고 했다. 그는 “엄마는 늘 당신보다 누나들과 저, 아버지를 챙기느라 바쁘게 사셨다”고 했다.

이들은 모두 지하 주차장 출입구 쪽에서 발견됐다. 박치민 포항남부소방서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사망자들은 지하 주차장 차량 진입로 부근이나 외부와 연결된 계단 쪽에서 발견됐다”며 “물이 들이닥치자 차량 이동을 포기하고 외부로 탈출을 시도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베트남 참전 용사 아버지

다만 이 6명 외에 옆 단지 지하 주차장에서 사망한 안모(76)씨는 차량 내에서 발견됐다. 베트남 참전 용사 출신인 안씨는 누구보다 자기 관리를 잘하고 건강했던 아버지였다. 처제인 최모(71)씨는 “형부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등산할 정도로 부지런했다”며 “가족에게도 늘 비타민 하루 권장량을 챙겨 먹으라고 할 정도로 건강해서 100세까지 사실 줄 알았는데 이렇게 되니 기막히다”고 했다. 조카 안모씨도 “평생 가장으로 성실히 일하셨고, 늘 따뜻한 삼촌이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