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부터 충청도 한 경찰서에서 행정직 공무원으로 일했던 A(28)씨는 지난 7월말 9개월 만에 사표를 냈다. A씨는 1년 넘게 준비한 끝에 공무원 임용 시험을 통과했다. 그런데 그는 “조리실장 급여 관리나 경찰서 식단표 짜기, 은행에 가서 상사 통장정리까지 시키는 등 상사들이 잡일을 몰아줬다”며 공무원 생활을 접었다.
최근 20~30대 공무원들의 퇴직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국민의힘 김웅·조은희 의원실이 행정안전부와 경찰청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중앙 부처와 경찰·소방 등 국가직 공무원 퇴직 현황 자료에 따르면, 매년 자발적으로 퇴직한 20~30대 공무원 규모는 2017년 1559명에서 2021년 2454명으로 57%가 증가했다.
같은 기간에 퇴직자가 1090명에서 1523명으로 41%가 늘어난 40대와, 9153명에서 6869명으로 33%가 늘어난 50대 이상과 비교하면 증가율이 훨씬 높았다. 2030대 공무원들은 공직 생활의 초입 단계에 있고 치열한 임용시험 경쟁을 뚫은 사람들이다.
이 현상에 대해 본지가 최근 만난 20~30대 공무원들은 “월급이 민간에 비해 작다는 건 이미 알고 선택했다”면서 “하지만 80~90년대식 비합리적 조직 문화가 여전한 것은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그들은 또 ‘철밥통’이라고 일컬어지는 등 공무원에 대한 사회적 평가가 낮은 점, 승진 등 다른 방식으로 보상받을 수 있는 길도 사실상 막혀 있는 현실도 원인으로 꼽았다.
2019년 9월부터 대전의 한 공공기관에서 9급 공무원으로 일하던 B(28)씨도 지난 5월 중순 사표를 냈다. “미래가 없다”고 느꼈다고 했다. 이 기관에서 올 초 9급 공무원 5명 중 4명이 8급으로 승진했는데, 상급자가 가장 나이가 어린 직원을 탈락시킨 후 “넌 앞으로 기회가 많잖아”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정말 열심히 공부해 공무원이 됐지만, 앞으로 열심히 해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것 같았다”고 했다.
MZ세대 공무원들은 민원인들을 직접 상대해야 하는 것도 힘들어 했다. 50대의 한 공무원은 “대면(對面)보다 전화나 문자에 익숙한 2030 직원들 경우, 기성세대에 비해 민원인 직접 응대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고 했다. 서울 한 구청에서 복지 분야 업무를 하는 9급 공무원 정모(32)씨는 “민원인에게 욕 듣는 게 일상”이라고 했다. 신청한 보조금이 나오지 않으면 구청에 찾아오거나 전화로 “구청장에게 신고하겠다”며 고성을 지르는 사람이 일주일에 3~4명씩 있다는 것이다. 그는 “관두고 싶다는 동기들이 많다”고 전했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자료에 따르면, 건강보험 직장가입자 중 우울증·스트레스 등 ‘다빈도 정신질환’으로 진료받은 비율이 가장 높은 직종은 공무원(5만1513명)이었다. 또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하는 2030 공무원들도 생겨나고 있다. 지난해 9월과 올해 2월 대전과 전북 전주에서는 각각 신임 9급 공무원이 업무 스트레스 등으로 극단적 선택을 했고, 지난 6월 세종시 소속 20대 여성 공무원도 비슷한 이유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부적 요인도 있다. 올해는 다르지만, 작년까지 주식시장이 활황이었고 젊은 층 사이에서 가상화폐 투자붐이 일면서 ‘투자 대박 신화’가 확산했다. 이런 상황이 MZ세대 공무원의 이탈을 부추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8년부터 최근 5년간 공무원 임금 인상률은 평균 1.9% 정도였다. 몇 달 전 퇴직한 한 공무원은 “월급이 작은 거를 감수하고 공무원이 됐지만, 막상 다녀보니 평생 돈 걱정 하면서 살 것 같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젊은 공직자들의 퇴직률 증가가 공직 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정수 이화여대 행정학과 교수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개인 사생활 존중, 능력에 비례하는 승진과 인센티브 등 젊은 층의 달라진 직장관을 반영한 공직 문화를 만들 필요가 생겼다는 의미”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