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낸 것이라며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 2020.7.13 /연합뉴스./연합뉴스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비서 A씨가 주고받은 텔레그램 대화내용이 공개된 것과 관련, 피해자 지원단체가 “성폭력 판단에서 상황과 맥락이 삭제되어서는 안 된다”며 입장을 밝혔다. 앞서 박 전 시장 유족 측 법률대리인을 맡았던 정철승 변호사는 A씨가 박 전 시장에게 “사랑해요”란 문자를 보낸 사실을 공개해 파문이 일었다.

정철승 변호사가 공개한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여비서 A씨가 주고받은 텔레그램 문자. /페이스북

서울시장 위력성폭력사건 피해자 지원단체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 측은 20일 ‘박 전 시장 유족에 의한 국가인권위원회 성희롱 결정 취소 소송에 제출된 피해자 자료를 정철승 변호사가 SNS에 유포한 행위에 대한 입장’을 통해 이 같이 밝혔다.

단체들은 “(텔레그램 대화는) 인권위 결정을 뒤집을 수 있는 새로운 증거가 아니다”며 “현재 정 변호사가 유포하고 있는 텔레그램 메시지는 2020년 7월 8일 고소시 피해자가 직접 본인의 핸드폰을 포렌식 하여 제출한 것이다. 이 포렌식 결과는 성희롱 결정을 한 인권위의 판단 과정에서도 이미 검토된 것”이라고 했다.

이어 “(피해자가 보낸 메시지는) 가해자의 행위를 멈추기 위해서, 더 심한 성폭력을 막기 위해서 가해자의 비위를 맞추거나, 가해자를 달래는 행위는 절대적 위계가 작동하는 위력 성폭력 피해의 맥락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며 “피해자가 처한 상황과 맥락을 삭제한 채 성폭력인지 여부를 판단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단체들은 “정 변호사가 피해자가 더 큰 성폭력 피해를 막고자 가해자를 달래거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사용한 표현 등을 맥락 없이 유포하여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며 “절대적 위계 관계에서 단호한 거부 의사 표현은 보복이나 불이익 등으로 인해 쉽지 않으며, 위계에 의한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의 이러한 반응은 흔히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A씨가 고소인 진술서에서 적은 내용을 공개했다. A씨는 “이러한 피해를 겪으며 매순간의 행동과 처세를 선택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저의 안전이었고 두 번째는 시장을 위해 봉사했던 저의 공무원으로서의 정체성과 비서로서의 사명감이 무너질 허무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의 수치스러움을 속이고, 엄청난 두려움을 참고, 이 모든 것은 서울시와 저, 시장 모두를 위한 일이라고 세뇌시켰습니다”란 내용을 적었다.

A씨가 박 전 시장에게 “사랑해요” “꿈에서는 돼요” “꿈에서 만나요” 등의 메시지를 보낸 정황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단체들은 “정치인 박원순의 활동에서 ‘사랑해요’는 지지자와 캠페인 차원에서 통용되던 표현이다. 자원봉사자, 장애인, 아동, 대학생, 지지자와 박 전 시장 사이에서 사용됐다”며 “피해자는 4년간 박 전 시장의 비서로서 수발하며 정치인 박원순을 지지하고 고양하고 응원하는 ‘사랑해요’ 표현을 업무 시에 계속 사용했다”고 주장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생전 대중 앞에서 '사랑한다'는 의미를 담은 하트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 전 시장은 여러 공식행사에서 이 포즈나 손하트 등으로 '사랑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뉴시스

이어 “특정 시점의 대화가 포렌식된 자료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가 ‘먼저’ 박원순 전 시장에게 ‘사랑해요’라고 말했다며, 이것이 대단한 반전인 것처럼 정 변호사는 호도하고 있다”며 “박 전 시장의 편에서 피해자를 음해, 비난하는 일부 세력 또한 ‘피해자가 먼저 선을 넘었다’ ‘허위 신고’였다고 주장하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꿈에서 만나요”에 대해선 “직장의 수장인 박 전 시장의 연락이 밤늦게 이루어지는 것이 반복되었던 시점에서 피해자가 이를 중단하고 회피하고자 할 때 마치 어린아이 달래듯 사용할 수밖에 없었던 표현”이라고 했다.

이 역시 A씨가 제출한 고소인 진술서에 포함된 내용이다. 진술서엔 “저는 ‘늦었어요’ ‘내일 중요한 일정이 있으니 컨디션 관리하려면 주무세요’라는 말들로 성적 수치심을 일으키는 대화를 종료하려 했고, 시장은 그 와중에도 ‘내 꿈 꿔’라고 말했다”며 “그 뒤 대화에서 성적인 위협이 느껴질 때면 제가 먼저 대화를 끊으며 ‘꿈에서 만나요’라고 말하기도 했고, 시장이 ‘꿈에서는 해도 돼?’라고 물으면 본인이 ‘꿈에서는 해도 돼요’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어디까지 해도 돼?’라고 물으면 처음에는 ‘부끄러우니 손만 잡자’고 하다가 나중에는 스스로 자포자기하는 심정이 되기도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단체들은 “피해자에 대한 더 이상의 공격은 안 된다”며 “피해자는 경찰 및 인권위 등 국가 공적 기구에 조사를 신청하고 절차에 최선을 다해 임했다. 피해자는 정당한 절차를 밟아 더 이상의 피해를 막고, 피해 사실을 인정받고자 했다”고 했다.

이어 “이미 결정이 이루어진 사안을 부정하고, 결정 취소 소송을 제기하고, 소송 중 획득한 피해자 자료를 피해자 공격을 위해 왜곡, 짜깁기 유포하고 있는 상황이 참담하다”며 “성폭력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고 함께 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피해자는 일상을 회복해보려고 애쓰고 있다. 피해자의 공격행위에 대한 언론보도, 재유포 행위를 멈추고 동조하지 말아 주실 것을 모든 시민께, 특히 언론에 요청드린다”고 했다.

아울러 “사건이 알려진 후, 피해자 공격 및 모욕 행위는 지속됐다. 피해자 근무 부서 및 실명을 색출하려는 시도, 피해자 아닌 제 3자를 피해자라고 칭하여 사진을 유포하는 행위, 피해자 사진에 얼굴만 블러 처리하여 유포하는 행위, 피해자 손글씨 유포, 피해자 근무기간, 직급 등 상세 정보를 유포하는 행위가 끊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끝으로 “그 중 최측근에 의한 피해자 공격행위는 매우 심각했다. 이에 피해자 실명을 게재한 박 전 시장 지지자 최모씨는 형사 유죄 판결과 민사 배상 결정을 받았으며, 역시 피해자 실명을 본인 SNS에 올린 김모 교수는 형사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2심 재판 중에 있다”며 “피해자 인사 상세정보를 게재한 정철승 페이스북 글은 삭제하라는 내용의 가처분 결정을 받았다. 정 변호사와 이에 동조하는 자들의 탈법적, 위법적 행위를 멈출 것을 경고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