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현지 시각) 필리핀 세부 막탄공항에서 대한항공 여객기의 동체가 파손된 채 멈춰서 있다./트위터

필리핀 세부 막탄공항에서 대한항공 여객기가 착륙 후 활주로를 이탈하는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긴박했던 당시 상황이 알려졌다.

24일 세부 여행 관련 카페에 사고 상황을 전한 대학원생 김모(31)씨는 조선닷컴에 “기장과 부기장, 승무원분들이 끝까지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뛰어다니셔서 무사할 수 있었다”며 “감사한 마음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해당 여객기는 전날 오후 7시 20분쯤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했고, 세부 막탄공항에 비정상 착륙했다. 천둥 번개를 동반한 강한 비로 두 차례 착륙에 실패했고, 세 번째 시도에서 가까스로 착륙했으나, 활주로에서 제동하지 못하고 오버런(over run) 했다. 승객 162명과 승무원 11명은 비상탈출 슬라이드를 타고 탈출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23일(현지시간) 필리핀 세부 막탄공항에서 악천후 속 착륙 후 활주로를 이탈(오버런·overrun)하는 사고가 발생한 대한항공 여객기가 파손된 채 멈춰서 있다./트위터

김씨는 카페에 “영화 한 편 찍고 나왔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사고 직후 구글 앱을 켜보니 공항 끄트머리에 비행기가 있더라”며 “500m~1㎞만 더 갔어도 도로를 넘어 민가를 칠 뻔했으나 다행히 구조물을 박고 멈춘 듯하다”고 썼다. 이어 “착륙 자체는 매끄럽게 됐는데 비 때문인지 속도가 생각만큼 줄지 않고 미끄러졌다”며 “착륙 실패했을 때 쿵 하며 충격이 가해진 후 다시 상승했는데 그때 착륙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다”고 했다.

김씨는 “비상착륙한다는 기장의 방송 이후 착륙을 시도하자 모든 승무원들이 소리를 질렀다. 소리 지르는 것 때문에 더 놀랐다”며 “(승무원들이) ‘머리박아!’를 반복하며 소리지르고 계셨다”고 했다. 그러나 임신 중인 그는 지시에 따라 무릎 사이에 얼굴을 숙였지만 배가 눌리는 등 쉽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생각보다 매끄러운 착륙에 사람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고 웃으며 박수치고 안도하는 가운데 남편에게 ‘아직 고개들지마. 혹시 모르니까 숙여’라고 하자마자 ‘쾅’ ‘쾅’하는 엄청난 소리와 함께 미친듯한 충격이 가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 와중에 배가 눌리길래 고개고 뭐고 드러눕듯이 누운 채 벨트가 배 위로 오도록 했다”며 “5초 이상 충격이 가해진 것 같다. 엄청난 충격과 함께 비행기 전체가 정전되고 매캐한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고 설명했다.

이후 승무원들은 기내에 화재가 발생하진 않았는지, 위험에 처한 승객은 없는지 등을 확인한 후 비상탈출 미끄럼틀을 펴고 승객들을 차례로 탈출시켰다고 한다. 김씨는 “안내방송으로 듣고 궁금했던 미끄럼틀을 이런 식으로 확인하게 될 줄 (몰랐다)”고 했다. 탈출 이후에도 혹시 모를 폭발 위험 때문에 승객들은 비행기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야 했다고 한다. 비행기에서 빠져나온 승객들은 공항에서 한참 대기한 후 각자 숙소로 옮겨갔다는 게 김씨의 설명이다.

대한항공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한편 해당 여객기를 타고 귀국할 예정이었던 승객들을 태우기 위해 대체 항공편을 보낼 예정이다. 현재 세부 공항에서 인천공항으로 돌아올 예정이던 대한항공·제주항공 등의 항공편 출발이 지연되고 있다.

대한항공 우기홍 사장은 사과문을 통해 “대한항공을 아껴주시는 모든 분께 머리 숙여 사과드린다”며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탑승객과 가족분들에게 심려를 끼쳐 드려 송구한 마음”이라고 사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