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억2500만원, 이자율 0%.

2014년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후크엔터테인먼트(대표 권진영)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가수 겸 배우 이승기(35)는 소속사인 후크에 ‘운영 자금’을 명목으로 이 금액을 이런 이자율로 빌려준 것으로 나온다. 이승기는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대출(19억원)까지 받는다.

연예인이 소속사에 이렇게 큰 돈을 이자도 받지 않고 빌려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후크는 소속 연예인에게 빌린 거액으로 무얼 했을까. 최근 한 매체는 권진영 후크 대표가 이 돈으로 고급 빌라를 매매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틀렸다. 후크는 그 돈으로 청담동 건물주가 된다. 47억2500만원의 딱 두 배인 94억5000만원짜리 청담동 빌딩을 매입한다.

가수 겸 배우 이승기, 권진영 후크엔터테인먼트 대표(왼쪽부터) /후크엔터테인먼트

◇ 후크, 이승기 47억5000만원으로 건물 매입..명의는 ‘후크’

후크와 이승기의 이상한 돈거래는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후크는 2011년 4월 서울 강남구 청담동 명품거리 인근에 있는 건물을 산다. 매입가는 94억5000만원. 후크는 건물을 사기 위해 이승기를 끌어들인다. 후크는 이승기에게 ‘반반 투자’를 해 건물을 사자고 한다. 건물 취득세와 및 등록세는 후크가 부담하되, 매입가액 및 부동산 수수료 등은 정확하게 반반씩 나누기로 한다.

후크가 이승기에게 준 청담동 건물 관련 약정서/김소정 기자

이승기가 부담하기로 한 금액은 건물 매입가액의 딱 50%인 47억2500만원+부동산 수수료 50%인 1750만원+은행 대출 수수료 등을 포함해 총 47억4384만원이었다.

그러나 정작 건물 등기엔 투자자인 이승기의 이름이 없었다. 후크의 단독 명의였다. 이승기는 수차례 공동명의를 요구했으나,그때마다 후크는 이승기에게 이런 핑계를 대며 명의 변경을 차일피일 미뤘다고 한다.

“대중들은 연예인들이 건물 사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건물 지하에 있는 바(Bar) 사장이 질이 안 좋아서 너가 골치 아파질 수 있다”

후크는 이승기에게 ‘청담동 빌딩 매입 현황’이라는 문건도 줬다. 이 문건에는 이승기의 47억2500만원이 ‘건물 지분 50%’라고 표기됐다. 공동명의 변경 시점도 언급했다. “이승기의 군입대 발표 직후에 하는 게 옳다고 봄”이라 적었다. 또 이승기의 ‘47억2500만원은 후크에서 빚진 걸로 세무상 정리했다’는 내용도 담겼다. 실제로 이승기의 47억2500만원은 후크 감사보고서에 ‘단기차입금’으로 회계처리 된다.

투자를 받은 게 아니라, 단순히 빌렸다는 의미다.

후크가 이승기에게 준 청담동 건물 관련 약정서/김소정 기자
2014년 후크엔터테인먼트 감사보고서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2016년 이승기가 군입대를 했지만, 건물 명의는 바뀌지 않았다. 2017년 10월 제대 후에도 그대로였다. 건물주는 여전히 후크였다. 그 사이 후크는 건물에서 나온 월세 수익도 챙겼다. 2013년~2021년까지 월세 수익만 약 31억원이다. 그중 이승기 몫은 ‘0원’이었다. “왜 월세 수익을 안 챙겼냐”는 조선닷컴 질문에 이승기 측은 “언젠가는 알아서 챙겨주겠거니 했다”고 답했다.

◇ 2021년 갈등 시작되자…후크 “건물 투자금→대여금” 주장

그러나 2021년 5월 이승기와 후크가 갈등을 빚기 시작하며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진다. 이승기가 후크를 떠나 1인 기획사를 설립해 독자 활동을 이어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해 5월24일 후크는 보도자료를 내고 “이승기 독립 후에도 언제나 이승기의 조력자로서 이승기를 응원하며 어떠한 형태로든 이승기와의 파트너십을 계속 유지할 것”이라며 아름다운 이별을 예고했다.

후크엔터테인먼트가 2011년 매입한 청담동 건물/네이버 지도

이제 정리할 건, 청담동 건물.

권진영 대표는 2021년 5월20일 이승기에게 메세지를 통해 “드라마 잘 마쳐서 다행이다. 정말 고생했다”라고 격려해 준다.

그리고 청담동 건물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권 대표는 “너에게 건물을 양도하고 정리하려 했던 부분에서 너가 홀로 독립을 원한다고 해서 너에게 양도하는 건 물리적으로 힘들 거 같고. 너가 투자했던 원금에 그동안 받았던 월세를 정산해서 지급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는 결론이다”라며 ‘지급내역서’라고 적힌 파일 하나를 보낸다. 해당 카톡에서 이승기가 부친이 건물 정리에 대해 궁금한 게 있다고 하자, 권 대표는 “이건 당사자끼리 정산해야 한다” “가족이 개입해 혹시 마음이 다치거나 오해가 생기지 않길 바란다”며 가족이 건물 문제에 개입하는 걸 반대하기도 한다.

2021년 5월 20일 권진영 후크 대표가 이승기에게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김소정 기자

◇ 후크-이승기 6월 재계약 후 작성한 합의서에는...

5월까지만 해도 이승기의 돈을 ‘투자금’이라고 말해준 권진영 대표. 두 달 뒤, 권 대표는 말을 바꾼다.

한 달 뒤인 2021년 6월10일 이승기는 후크와 재계약을 한다. 이 과정에서 이승기와 후크는 금전적 채권·채무 관계를 정리해 정산하기로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실을 확인하는 내용의 합의서를 작성한다.

2021년 7월22일 작성된 이 합의서에는 청담동 건물이 등장한다. 그런데 10년 간 이승기가 줄곧 주장해왔던 공유 지분 언급은 단 하나도 없었다. 심지어 이승기의 47억2500만원은 ’투자금’이 아닌 ‘대여금’으로 적혀 있었다. 두 달 전 권 대표의 카톡 메시지와는 달라진 것이다.

합의서에는 “갑(후크)은 을(이승기)에게 대여금 원금 47억2500만원, 대여금 원금에 대한 이자 19억8157만원을 지급한다. 합계 67억658만원. 갑의 을에 대한 대여금 채무는 모두 소멸함을 확인한다”고 적혀 있다. 또 “을(이승기)은 갑(후크) 소유 건물에 대해 어떠한 권리도 없음을 확인하며, 향후 이와 관련해 어떠한 분쟁도 제기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승기는 10년 넘게 건물 투자자라고 생각하며 살아 왔지만, 결국 이 합의서에 도장을 찍는다. 합의서만 보면 이승기는 후크가 건물을 살 수 있게 돈만 빌려준 셈이 된 것이다. 이승기는 후크로부터 ‘원금+이자’에 해당하는 ‘67억원’을 받았다. 이승기의 투자금을 청산한 후크는 석 달 뒤, 청담동 건물을 177억원에 팔아 약 82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뒀다.

◇ 월세도 안 받고, 합의서에 사인한 이승기..왜?

이승기 주변 인물들은 이승기가 끝까지 건물 지분을 요구할 수 있었지만, 소속사의 가스라이팅 때문에 지쳐 어쩔 수 없이 합의서에 도장을 찍었다고 전했다. 한 연예계 관계자는 “당시 이승기가 열애 보도, 소속사와 갈등을 겪으면서 심신이 지친 상태였다. 돈 문제로 소속사와 얼굴 붉히고 싸우고 싶지 않아, 그냥 포기하고 합의서에 도장을 찍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승기를 잘 아는 관계자는 “평소 후크가 돈 이야기만 나오면 예민하게 굴었다고 한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작년 5월, 소속사를 나간다고 할 때도 이승기가 돈 문제를 꺼냈더니 ‘서운하다’ ‘연예인이 돈 밝히면 안 된다’느니 이런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때도 청담동 건물 처리 방식을 이야기했는데, 해결이 잘 안 됐다. 이승기씨가 이러다 돈을 못 받을 것 같아 합의서가 부당하다는 걸 알면서도 도장을 찍어줬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후크 측은 처음부터 이승기가 건물에 투자한 게 아니라, 후크에 돈을 빌려줬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후크의 법률대리인은 조선닷컴과의 통화에서 “건물 반반 투자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그 건물을 살 때, 절반 정도의 금액을 빌리기로 했던 거다. 건물을 팔기 전에 이승기씨랑 정산이 이뤄진 거고. 이승기씨는 현재 투자라고 주장하는 거 같은데, 건물을 팔지도 않았는데 돈을 받는 건 이상하지 않냐”며 의문을 제기했다. ‘이승기 지분 50%’라고 적힌 약정서에 대해선 “알아보겠다”고 답했다.

이에 대해 이승기의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최선의 이동훈 변호사는 “이승기씨는 오랜 기간에 걸쳐 음원료 수익 정산뿐만 아니라 건물 투자금 반환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후크의 부당한 합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후크의 제안 외에는 투자금을 환수 받을 방법이 없던 이승기씨는 별다른 이의도 제기하지 못한 채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