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 양양군에서 산불 계도를 위해 비행 중이던 헬기(S-58T)가 지난 27일 야산에 추락해 기장 등 탑승자 5명이 전원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가운데, 기장의 나이가 71세라는 점이 눈에 띈다. 이번 사고가 기장의 조종 미숙이 원인으로 밝혀진 것은 아니다. 다만 각 지자체에서 고령운전자의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만 70세 이상 어르신들의 운전면허증을 자진 반납하는 정책을 펴는 가운데, 자동차 운전보다 복잡한 헬기 조종에는 연령 제한이 없는지 의문이 제기된다.
현행 국내 항공안전법에 따르면 항공기 조종사는 정년을 만 60세로 정하고 있다. 조종사의 의사와 소속 회사의 사정으로 5년을 더 연장할 수 있다. 그러나 연령 제한은 항공사의 규모와 항공기의 사용 용도에 따라 달라진다. 대한항공, 아시아나 등 대형 항공사와 같이 인원을 수송하는 ‘운송사업용’ 비행에는 조종사의 정년이 있지만, 민간항공의 화물을 수송하는 ‘사용(私用)사업용’에는 정년을 규정하는 법이 마련돼 있지 않다.
사고가 난 헬기는 속초·양양·고성 등 3개 시·군이 항공기 임대업을 하는 ‘트랜스헬리’사(社)와 계약을 맺고 산불 진화용 등으로 사용해온 것으로 사용사업용 항공기에 해당된다. 따라서 71세 기장도 헬기를 조종을 할 수 있었다. 지난 28일 트랜스헬리 이종섭 대표는 기자회견에서 “에어라인 등 인원을 목적으로 하는 곳은 연령제한이 정해져있지만, 우리 같은 화물은 연령 제한이 없다”면서 “대신 조종사는 6개월에 한번씩 신체검사를 통과해야 항공기를 탈 수 있다”고 했다.
71세 기장은 40년 이상 경력의 베테랑 조종사였다. 그는 공군에서부터 헬기를 몰았고 소방항공사에서도 근무하며 산불을 진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랜스헬리에는 5년 전에 입사해 다른 조종사들을 교육시키는 교관 파일럿으로서 일하는 등 회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이번 사고 원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문가들은 베테랑이라고 하더라도 나이가 들면 조종사의 기량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이를 규정하는 법이 없다는 것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또한 인원을 수송하지 않는 사용사업용 항공기라고 하더라도 조종사의 실수로 인해 사람이 밀집된 지역에 헬기가 추락하거나 화물이 낙하하면 큰 인명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에 관련 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인규 한국항공대 비행교육원장은 “미국 등에서는 조종사가 부족해 정년을 67세로 늘리는 등 방안을 내세우기도 하지만 (조종사들이) 60대 초반까지 일을 하고 은퇴하는 것이 보통”이라면서 “군과 소방 등 체계적인 조직에서는 연령을 제한하는 등 조종사 관리가 되고 있지만 민간 항공에서는 정기 신체검사만으로 연령 제한을 대신하는 등 조종사 관리에 대한 제도적 맹점이 보이는 부분”이라고 했다. 이어 “다만, 시스템이 갖춰진 대형항공사 등과 같은 기준으로 영세한 민간항공사들을 규제하기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고 독립적으로 그들의 사정에 맞춘 관리 체계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