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가 14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출근길 지하철 승하차 시위로 운행 지연이 발생하자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에서 처음으로 열차가 역에 서지 않고 그냥 지나치게 하는 무정차 통과를 시행했다. 일각에서는 “명백한 불법에 대해 공권력을 행사하지 않고, 시민 피해를 볼모로 전장연 문제를 해결하려는 편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출입문에 끼울 사다리 들고… - 1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삼각지역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관계자들이 사다리를 들고 열차에 타려고 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이날 전장연 관계자들의 불법 승하차 시위로 운행 지연이 발생하자 열차를 역에 서게 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게 하는 무정차 통과를 시행했다. 하지만 이 조치 역시 시민 불편이 생긴다는 점에서 미봉책이란 지적이 많다. /뉴스1

전장연 관계자들은 이날 오전 8시 36분쯤 삼각지역 승강장에서 장애인 이동권 예산 등의 국회 통과를 요구하며 삼각지역에 들어온 열차 탑승을 시도했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휠체어 바퀴를 열차와 승강장 사이에 끼우는 식으로 약 7분 30초쯤 운행을 지연시켰다. 운행 방해 목적의 철제 사다리 등도 반입하려 했다. 이 열차는 현장에 나온 전장연 관계자 일부를 태우고 삼각지역을 떠났다. 교통공사는 8시 44분쯤 뒤이어 들어오던 열차를 무정차 통과시켰다. 당시 역에는 전장연 관계자 10명 가까이가 남아 있어, 이들이 이 열차를 또 지연시킬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8시 52분쯤부터는 열차가 정상 운행됐다.

교통공사는 지난 12일, 앞으로 전장연 시위로 심하게 열차가 지연될 것으로 예상되면 무정차 운행을 하겠다고 밝혔고, 이날 처음 시행했다. 하지만 이런 무정차 운행 역시 미봉책이란 비판도 많다. 무정차 운행을 하면 내려야 할 역에 내리지 못하는 시민들은 여전히 불편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울교통공사는 이날 대체 운송 수단으로 삼각지역에서 인근 전철역인 신용산역·숙대입구역으로 향하는 임시 버스를 한 대씩 1회 운행했지만 시민들 불만은 여전했다. 서울 노원구에서 사는 최모(31)씨는 “6호선을 타고 삼각지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 직장으로 가야 하는데 서지 않는다는 방송을 듣고 버스로 갈아타느라 오전 9시 회의에 15분 늦었다”고 했다. 삼각지역 인근에서 매일 서초구로 출근하는 직장인 박모(32)씨는 “아침에 삼각지역 이용하기가 늘 불안하다”면서 “통학하는 중·고등학생들은 무슨 죄인가”라고 했다.

시민들 사이에서는, 전장연 측 행위가 불법임이 명백한데도 경찰이나 서울시가 원칙 아닌 편법으로 해결하려 한다는 불만도 나온다. 전장연 시위 때 지하철 경찰대, 일선 경찰서 인력 등이 현장에 대거 배치된다. 하지만 이들은 전장연 측을 현장에서 체포하거나 즉각 해산시키는 대신 경고만 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시키는 일만 주로 해왔다. 이런 시위가 시작된 지 1년이 넘었는데, 경찰은 이달 초에야 전장연 관계자 11명을 업무 방해, 기차 교통 방해 혐의 등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사실상 사후 조치만 하는 상황이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열차 운행을 관리하는 교통공사가 경찰에 구체적으로 어떤 피해를 보았는지 파악해 시위를 해결해 달라고 요청해야 경찰이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다”고 했다. 체포 과정에서 장애인이 부상당하면 전장연 측을 더 자극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도 경찰이 원칙 대응을 망설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교통공사 측은 “지하철 보안관은 따로 사법권이 없어 현장 체포 등을 할 수가 없다. 다만 업무방해 혐의 등에 대해 전장연을 지속적으로 사후 고발 조치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과 마찬가지로 서울시와 공사도 지난 1년간 뚜렷한 현장 대책을 내놓지 못했고, 대통령실 요청이 와서야 무정차 운행을 결정했다는 점에서 소극적으로 대응했다는 비판이 많다.

전장연 측은 15일에도 출근길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이들은 이른바 ‘장애인 권리 예산’을 내년도 예산안에 반영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장연 측의 요구를 감안해 국회 보건복지위와 환경노동위 등이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나 근로지원 예산을 정부안보다 늘려 내년도 예산안에 일부 반영해 둔 상태다. 이들은 예산안 확정까지 계속 시위를 벌이겠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