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25일 자 본지에 실린 서영은양의 사연이 담긴 기사. 수술을 앞두고 당시 담당 의사와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조선일보DB

지난 16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의 세브란스 어린이병원. 한 50대 남성이 병원의 사회사업팀 사무실을 찾아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품속 주머니에서 현금 50만원이 든 흰 종이봉투를 꺼내며 말했다. “딸이 처음으로 사회생활을 해서 번 돈입니다. 많진 않지만 아픈 아이들을 위해 써주세요. 고맙습니다.”

이 남성의 딸은 10년 전 병원이 마련한 ‘크리스마스 소원 이벤트’에 뽑혀 병원에서 수술비를 지원받았던 서영은(21)씨였다. 당시 선천성 신장 기능 이상으로 투병하던 열한 살 소녀는 신장을 이식받아 건강을 회복했고, 지금은 대학을 졸업한 후 어엿한 사회인이 됐다. 작년 8월 경기도 성남세무서에서 대학생 인턴 생활을 하며 받은 첫 월급 50만원을 아버지를 통해 기부한 것이다.

그는 태어난 지 3개월 만에 소변이 신장으로 역류하는 증세가 나타나는 선천성 요로 기형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서씨는 한 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냉난방기 설치 일을 하는 아버지(53), 오빠(24)와 셋이서 경기 성남시에서 살았다. 서씨가 수시로 수술 등 병원 치료를 받느라 수년간 병원비 부담이 커져, 이 가정에는 생활고까지 닥쳤었다.

그런 서씨에게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인 2012년 12월 크리스마스의 기적이 찾아왔다. 세브란스 병원이 당시 크리스마스를 맞아 본관 로비에 환자와 방문객이 참여할 수 있는 소원 트리를 설치하고 추첨을 통해 해당 소원을 이뤄주는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거기에 뽑힌 것이다. 서씨는 당시 소원 카드에 ‘하느님 이번 수술이 마지막 수술이 되게 해주세요’라고 적었다. 병원 측은 서씨를 돕기 위해 병원 노사 공익 기금에서 마련한 400만원을 수술비로 대신 내주는 등 총 1500만원 규모의 도움을 줬다고 한다. 그 뒤 건강을 회복한 서씨는 지금은 한 중소기업 본사 회계팀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서씨는 “제게 찾아온 뜻밖의 행운이 오랜 투병 생활을 버티게 했다”며 “고통을 희망으로 바꾸는 기적을 다른 아이들도 경험할 수 있게 제가 받은 행운을 다른 분들께 더 크게 돌려드리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