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재현의 형사판] 형사법 전문가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박사와 함께하는 사건 되짚어 보기. 이번 주 독자들의 관심을 끈 사건에 관해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한 단계 더 들어가 분석하고, 이가영 기자가 정리합니다.

/일러스트=이철원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검찰‧경찰 등 수사기관에 압수수색영장을 내주기 전 판사가 ‘대면 심문’을 통해 압수수색이 필요한 상황인지를 따질 수 있도록 하는 규칙 개정에 나섰습니다. 이를 두고 검찰과 법무부는 “수사정보가 샐 가능성이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는데요, 여기에 각종 은어를 사용하는 디지털 성범죄나 마약 범죄 등의 수사도 어려워질 거란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번 대법원의 형사소송규칙 개정안, 설명부터 해주세요.

현재 압수수색영장 발부는 문서로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법원에선 “압수수색영장 발부의 진실성을 명확히 하고 수사의 필요성을 명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기 위해 대면심리 방식을 도입했다”고 취지를 밝혔습니다.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할 때 ‘검색어’를 적을 것을 요구하고 있던데요, 이러면 범죄자를 놓칠 수 있다고요?

디지털 증거는 ‘선별 압수수색’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러니까 대상이 되는 컴퓨터만을 포렌식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이때 해당 컴퓨터를 검색할 때 미리 영장에 적시된 ‘검색어’만 넣어서 포렌식해야 하는 겁니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데요. 디지털 성범죄자가 성착취물을 보관하는 파일명이 기상천외합니다. ‘ㄱㄷㅇ’(여고생의 비속어인 고등어의 초성) 혹은 ‘az844bv6987?,.ㄹ=24₩’ 등이 있었습니다. 이런 파일명을 수사기관이 사전에 알고 영장에 ‘검색어’로 적시할 수 있을까요? 여러분이라면 상상이나 할 수 있으신가요?

또 파일 저장과정에서 일부러, 혹은 실수로 오‧탈자나 띄어쓰기 오류가 발생한 경우 오히려 정확한 검색어가 기재된 영장으로는 해당 파일을 검색하거나 압수할 수 없기도 합니다.

은어를 많이 사용하는 마약이나 비자금‧뇌물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비자금을 ‘저수지’로, 뇌물을 받은 건 ‘슈킹’으로 표현하거나 회장을 ‘체어맨’으로 저장한 사실이 확인되더라도 미리 영장에 해당 검색어를 기재하지 않았다면 새로운 영장을 발부받아야 합니다. 그 사이 증거인멸 가능성은 높아지겠죠.

디지털 압수수색은 사생활이 침해될 수 있어 범죄와 관련성이 있는 검색어를 제시하라는 법원의 입장은 이해됩니다. 그러나 범죄자는 증거를 숨겨 놓은 파일명을 범죄와 전혀 관계없는 이름으로 저장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청소년의 미래를 지운 성착취물 증거확보는 꼭 필요합니다.

◇대면심리에 또 다른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요?

경기도청 총무과 5급 공무원이었던 배모씨가 비서실 7급 공무원이었던 A씨에게 소고기를 구입하라고 지시하는 내용의 텔레그램. A씨의 내부고발로 김혜경씨의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이 불거졌다. /KBS

대면심문 대상에 ‘제보자’와 ‘피의자’도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권력형 비리, 부패사건은 많은 경우 내부고발에 의해 사건이 알려집니다. 제보자의 진술에 따라 수사기관은 사건 초기 압수수색영장을 법원에 청구합니다. 그런데 법원이 제보자를 심문하기 위해 출석요구서 등을 보내게 되면 제보자가 드러날 수 있습니다. 권력형 비리, 부패범죄에 꼭 필요한 내부고발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더 심각한 건 개정안은 피의자 측을 불러 심문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피의자를 불러 심문한 뒤 법원이 할 수 있는 결정은 두 가지입니다. 영장청구 기각 혹은 영장발부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영장을 기각할거라면 피의자를 부를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기각하면 됩니다. 피의자를 불렀다가 기각하면 수사상황을 알려주는 것,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피의자를 불렀다는 건 곧 영장 발부란 의미가 되는데 이것도 말이 안 됩니다. 피의자에게 증거인멸 시간만 부여하는 모양새가 됩니다. 분명 피의자가 영장발부 시간보다 빨리 증거를 인멸할 겁니다. 자기증거인멸은 처벌하지 않는데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그럼에도 검찰의 영장청구가 남용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데요.

민사사건에서 피해자들이 재판 청구하는 걸 남용이라고 하지는 않잖아요. 청구 요건에 맞지 않으면 법원이 기각하면 되니까요.

같은 이치에서 검찰이 실체진실을 밝히기 위해 영장청구하는 걸 남용이라고 하면 안될 듯 합니다. 검찰의 영장청구가 이유없다면 법원은 영장을 기각하면 되니까요.

검찰의 영장청구가 있으면 무조건 발부되는게 아니라 법원 판단을 통해 발부되는 겁니다. 검찰의 영장청구 남용 주장은 그 자체로 말이 되지 않습니다.

이번 대법원 형사소송규칙은 목적의 정당성이 다소 부족해 보입니다. 특히 영장전담판사의 입장에서 제보자를 불렀는데 이로 인해 신분이 노출되었다고 항의하거나 피의자측 관계자를 불렀다가 검찰이 이로 인해 당해 사건의 증거가 인멸되었다고 할 때, 분명 국민으로부터 거센 비난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때 과연 대법원장이 온몸으로 영장전담판사를 지켜줄 수 있을까요?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조선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