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이의 보살핌 없이는 살 수 없는 중증장애인을 보호시설에서 내보내 독립시키는 정책을 ‘탈(脫)시설’이라 부른다. 이들은 장애인생활지원센터가 보내주는 활동지원사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거기에는 정부 예산이 들어간다. 센터는 정부가 지원사 지원금으로 보내주는 돈의 약 25%를 수수료로 챙긴다. 전국 96개의 센터가 전장연 산하다. 전장연은 탈시설 운동을 주도하는 단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장애인 탈시설 정책을 사실상 총괄하는 5급 공무원 자리에 전장연 산하 인사를 임명했다가 논란이 일자 사표를 받고 면직 처리한 사실이 확인됐다.
23일 조선닷컴 취재를 종합하면, 보건복지부는 작년 11월 장애인 탈시설 정책을 사실상 총괄하는 장애인권익지원과장 자리를 ‘경력 개방직’으로 열고, 희망자를 접수받았다. 관련 경력을 가진 외부 인사를 심사해 채용하는 방식이었다.
지난 13일, 해당 자리의 주인이 결정됐다. 전장연 산하 사단법인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정책실장 출신 김모씨였다.
강제 탈시설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이 이 소식에 강하게 반발했다. 강제 탈시설을 주도해 온 곳의 산하 단체 출신 인사가 탈시설 정책을 총괄하는 것이 타당하냐는 지적이었다.
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는 17일 성명을 내 “김 과장은 장애우권익연구소 출신으로 전장연 산하 전국장애인부모연대에서 장애인 거주시설 폐쇄를 주장한 사람”이라며 “정책 입안에 있어 중립성을 지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전장연 산하 단체 정책실장 출신의 보건복지부 장애인권익지원과장 임명을 철회하라”고 했다.
부모회 측은 “김 전 과장 임명은 복지부 내부에 강제 탈시설을 주도하는 전장연 측 사람이 숨어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드는 인사였다”며 “탈시설을 총괄하는 자리에 강제 탈시설 혐의가 있는 전장연 출신을 뽑았다는 건 복지부 인사 시스템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걸 자인한 셈”이라고 했다.
결국 22일 복지부는 “김 전 과장을 오늘자로 의원면직 처리했다”고 밝혔다. 복지부에 따르면 김 전 과장은 임명된 지 일주일만인 지난 20일 사직서를 제출했다고 한다. 복지부 측은 “이번 인사는 경력개방직으로 채용을 진행한 것일 뿐 특정 인사를 염두에 두고 뽑은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행정기관이 전장연 측을 공공행정에 직접 참여 시켜 논란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서울시는 최근 전장연 측 인사들이 주도한 장애인 거주시설 ‘향유의집’의 강제 탈시설 관련 조사에 착수하면서, 강제 탈시설 가해자로 지목돼 조사를 받고 있는 전장연 박경석 대표와 전장연 산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소속 김모(48·여)씨를 조사 계획 수립 단계에 참여 시키겠다고 밝혀 논란을 빚고 있다. 둘은 강제 탈시설로 조사를 받고 있는 향유의집 운영진이었다.
2021년 복지부 역시 탈시설 향후 계획(로드맵)을 세우는 과정에서 박 대표와 김씨를 비롯, 전장연 산하 유한회사 사회적기업노란들판 이사 김모(46) 교수를 참여시킨 바 있다. 이들과 함께 로드맵을 만든 복지부는 결국 “2041년까지 장애인 거주시설 신규 개소를 금지해 장애인 모두가 탈시설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따라 가족도 없고, 몸을 움직이지도, 의사소통도 불가해 전문의료인력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한 장애인들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 없이 시설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처지가 될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