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전 길거리에서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10대들이 20대 남성을 집단 폭행해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수원 집단폭행’으로 알려진 이 사건은 여러 시사프로그램에서 방영되면서 주목받았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를 조롱하고, 법정에서도 웃음을 짓는 등의 행동을 보여 공분을 샀다. 시간이 흘러 가해자 중 일부가 마약사범이 되어 재판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망한 피해자의 지인은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고 “부디 이번에는 솜방망이 처벌이 아닌 가해자들이 엄중한 법의 철퇴를 맞을 수 있도록 엄벌 탄원서를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수원 집단폭행’ 사건 가해자, 필로폰 밀수로 징역 12년형
16일 인천지법에 따르면 11년 전 상해치사 등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았던 가해자 중 한 명인 A씨는 해외에서 필로폰을 밀반입하고 투약한 혐의로 지난해 11월 징역 12년형을 선고받았다. A씨는 다른 이들과 공모해 2021년 시가 약 9억2600만원에 달하는 필로폰 9263g을 국내로 몰래 들여온 혐의를 받는다. 또 자신의 집에서 필로폰을 투약한 혐의도 있다. 재판에 나온 증인은 “A씨가 필로폰 수입 범행의 상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1심 재판부는 “다량의 필로폰을 수입하고, 다른 종류의 범행으로 징역형을 선고받는 등 다수의 처벌전력이 있다”며 “그런데도 A씨가 납득할 수 없는 변명으로 일관하며 범행을 부인하고 있어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왜 쳐다보냐” 시비, 피해자 실신할 때까지 폭행
A씨가 연루됐던 과거 사건은 2012년 9월 3일 수원역 로데오거리에서 벌어졌다. 수원지법 판결문에 따르면 술을 마시고 귀가하던 10대 8명은 길을 지나던 이모(당시 20세)씨 일행 5명에게 시비를 걸었다. 가해자 김모군은 피해자 일행을 향해 “야 왜 쳐다보고 가냐”고 했고, 피해자들은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사과한 후 다시 길을 걸어갔다. 그러자 김군은 피해자 일행을 쫓아가며 잔여물이 남아 있는 바나나우유 통과 쓰레기 봉지를 던졌다. 박모군도 합세해 피해자 일행을 향해 빈 콜라 페트병을 던졌고, 나머지 일행들도 피해자들을 따라가며 욕설을 하는 등 계속 시비를 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해자 일행이 반응하지 않자 가해자들은 이씨에게 다가가 어깨를 치고, 얼굴을 때렸다. 이씨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김군의 어깨를 밀었다. 이때부터 이씨를 향한 집단폭행이 시작됐다. 이를 본 피해자 일행이 이씨를 구하기 위해 달려들었지만, 가해자들은 이씨의 친구들에게도 폭행을 가했다.
이씨가 실신했음에도 가해자들의 폭행은 이어졌다. 결국 이씨는 이틀 뒤 사망했다. 가해자들 중 6명이 상해치사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럼에도 가해자들은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피해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우리가 죽였냐? 네 친구가 죽은 거지” 등의 발언을 하며 오히려 피해자 탓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피해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폭행을 가해 결국 이씨를 사망에 이르게 하는 등 죄질이 매우 불량하고 비난가능성도 높다”고 판단했다. 또한 가해자들 중 3명이 동종범행으로 처벌받거나 소년보호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재범을 저지른 사실도 드러났다. 재판부는 가해자 3명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한 명은 징역 8년, 두 명은 징역 5년에 처해졌다. 하지만, 일부 가해자들은 판결이 선고된 후 방청석에 있는 친구들을 향해 웃음을 짓기도 했다.
항소심에서 이들의 형량은 절반으로 깎였다. 가해자들이 갑자기 범행을 모두 인정하면서 잘못을 반성하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일부 피해자의 부모와 합의하고, 법원에 공탁금을 낸 점 등도 양형 사유에 포함됐다. 2심 재판부는 가해자 1명에게 징역 5년을, 2명에게는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나머지 가해자 3명도 징역 2~3년을 각각 선고받았다.
◇”가해자들, 출소 후 ‘사랑한다’ 사진 올려”
그렇게 이들의 범행은 잊혀졌다. 그러다 지난 14일 사망한 피해자의 지인 B씨가 온라인에 글을 올리면서 A씨의 재판 또한 주목받게 됐다.
B씨는 “저의 지인은 11년 전 여동생의 생일을 맞아 미역국을 끓여주러 가던 중 청소년 8명에게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로 집단폭행을 당해 20살의 어린 나이에 사망했다”며 “그러나 항소심에서 형량을 절반이나 줄여 솜방망이 처벌로 사건은 끝이 나게 됐다”고 했다.
그는 “피해자 가족들은 죽고 싶었지만 이겨내려 했다”며 “하지만 가해자들이 출소 후 올린 사진을 보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게 됐다”고 했다. B씨가 올린 사진에는 6명의 남성들이 함께 주먹을 쥐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이와 함께 “역경을 같이 이겨낸 놈들아 사랑한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B씨는 “제 지인의 죽음이 저들에겐 고작 역경이라는 이름의 추억팔이로 전락했다는 것에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며 “그리고 이씨의 여동생도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충격을 이기지 못한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했다.
B씨는 “그러던 어느 날 가해자 무리 중 누군가가 필로폰을 밀수한 혐의로 구속됐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며 “저희는 가해자가 부디 이번에는 엄벌받기를 바라는 마음에 재판까지 직접 참관했다”고 했다. 1심에서 검찰은 징역 30년형을 구형했고, 재판부는 징역 12년형을 선고했다.
B씨는 “그런데 2심에서 가해자는 부장판사 출신을 비롯해 대형로펌의 변호사 5명을 선임했다”며 “그러자 2심에서 검사가 징역 15년형으로 구형을 절반이나 깎는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고 했다. 그는 “11년 전의 악몽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 죽고 싶었다”며 “부디 이번에는 솜방망이 처벌이 아닌 엄중한 법의 철퇴를 맞을 수 있도록 엄벌탄원서를 제출해 달라”고 했다.
A씨의 항소심은 서울고법 제2형사부에서 진행 중이다. 오는 18일 오후 2시 선고기일을 앞두고 있다. B씨가 요청한 엄벌탄원서 링크는 유튜브 채널 구제역에 공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