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179.5㎝, 몸무게 73.3㎏. 30대 여성의 몸이라기엔 위화감이 드는 건장한 신체의 나화린(37)씨가 오는 3~7일 열리는 제58회 강원도민체육대회 사이클 종목에 출전한다. 남자로 태어나 성전환(성확정) 수술을 받은 지 1년, 나 씨는 엄연한 ‘여성’ 선수다. 그런 나 씨의 출사표는 딱 한 문장이다. “체급을 나누는 것처럼 성소수자들을 ‘제3의 성별’로 구별해 뛰게 해달라”는 것이다.
1일 나 씨는 조선닷컴과의 통화에서 “제 궁극적인 목표는 출전부문이 ‘남녀’가 아닌 ‘성소수자’까지 넓혀지는 것”이라며 “돈이 많이 들고 위험한 성전환 수술을 결심한 것도 대회에 출전해 변화를 이끌어 내고 싶어서”라고 말했다.
나 씨는 이번 주말 양양에서 열리는 제58회 강원도민체전 사이클 경기 3종목 여성 부문(경륜, 스크래치, 개인도로)에서 선수로 뛴다. 트랜스젠더 여성으로서는 국내 최초로 도민체전에 참가하게 되는 것이다. 2011년, 2012년, 2013년, 2015년 남성부에 출전했던 나 씨가 올해는 성별이 바뀌어 여성부로 출전하게 된다.
현재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나 씨는 예전부터 사이클에 소질이 있었다. 2012년 제47회 강원도민체전에서는 사이클 남자 일반1부 1km 독주와 4km 개인추발, 개인도로, 도로독주 등 4개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해, 4관왕을 달성했다.
2015년 제50회 강원도민체전을 끝으로 대회를 나가지 않은 지는 8년 정도 되었다. 농업 본업이라 그동안 본업에 집중하느라 사이클을 타지 못했다. 대회를 앞두고 소위 ‘벼락치기’ 훈련 중으로 하루 3시간 정도 개인적으로 훈련하고 있다.
그사이 달라진 것은 나 씨가 여성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려서부터 여자가 되고 싶었던 나 씨는 2008년 10월부터 여성호르몬 주사를 맞았다. 지난해는 수술대에 오르는 큰 결심을 하고 서울 강동성심병원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올해 4월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도 2로 바꿨다.
나 씨는 “혼자 농사를 하면서 지내는 사람이라 주변의 시선을 느낄 것도 없어서 수술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수술을 결심하게 된 것은 트렌스젠더 선수로서 대회에 출전해 제 뜻을 알리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며 “사실 부담도 많이 됐다. 세계적으로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은 마음에 잘될 수 있을까 고민됐다”고 했다.
나 씨는 자신의 출전이 사회적으로 논란이 될 것도, 선수간 공정성 문제가 불거질 것도 이미 알고 있다. 그러나 체육계에 ‘성소수자 출전’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자 출전을 결심했다. 나씨는 처음에는 대회 출전 자체가 목표였지만, 우승을 통해 좀 더 파장을 일으키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서 우승을 욕심내고 있다고 했다. 나 씨는 이를 “논란이 되고 싶다”고 표현했다.
나 씨는 “여성 호르몬을 맞아도 골격 등 타고난 신체 조건은 바뀌지 않는다. 트렌스젠더 여성 선수들은 신체적으로 도핑을 한 셈”이라고 했다. 실제 나 씨 신체 조건은 다른 여성 선수들보다 월등하다. 골격근량은 일반 여성 평균인 20∼22㎏보다 월등히 많은 32.7㎏이다.
지난해 3월 영국에서는 트랜스젠더 사이클 선수 에밀리 브리지스(21)가 국제 사이클 연맹((UCI)으로부터 대회에 참가할 자격이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자신이 트랜스젠더임을 밝히고 호르몬 치료를 받으며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하고 있던 브리지스는 다른 여자 선수들과의 형평성 문제를 이유로 출전을 포기해야 했다. 사이클 외에 수영과 육상, 럭비, 역도 등 다양한 종목에서도 여성 트랜스젠더의 대회 출전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나 씨는 “이처럼 해외에서도 트렌스젠더 선수들의 출전이 논란이 되고 출전을 해서 우승을 한다 해도 영예롭지 못하다”며 “그렇다면 체급을 나누는 것처럼 ‘성소수자’를 따로 출전시키는 것이 ‘공정’이라는 스포츠 정신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첫 단추는 무사히 끼워졌다. 도민체전 여성부 출전에 성별 외에는 아무 제약을 두지 않기 때문에 나 씨가 참가하는 데 문제는 전혀 없다. 나 씨가 이번 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둔다면 전국체전에 진출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대한체육회 확인 결과 전국체전 출전 규정에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남녀’ 외에 트랜스젠더에 관한 내용을 따로 두지 않아 대회 출전에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나 씨는 “앞으로 대한자전거연맹, 크게는 대한체육회와도 접촉하면서 나의 의지를 알리고 싶다”며 “출전부문이 ‘남녀’가 아닌 ‘성소수자’까지 넓혀지는 꿈이 이뤄진다면, 기량이 유지되는 한 선수 활동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