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오후 인천 동구 송림동 현대시장. 입구에 들어서자 매캐한 냄새가 진동했다. 최근 내린 비로 바닥은 곳곳이 물웅덩이로 변해있고, 시장 아케이드 지붕은 불에 타 새까맣게 녹아내려 있었다. 철골 구조가 앙상하게 보일 정도였다. 1시간 넘는 시간 동안 물건을 사러 시장을 들른 손님은 9명뿐이었다.
지난 3월 40대 일용직 근로자가 술에 취해 불을 지르는 바람에 시장은 엉망이 됐다. 205개 점포 중 3분의 1이 피해를 입었고, 그중 47곳은 몽땅 잿더미로 변했다. 불이 난 지 석 달이 다 됐지만 시장은 여전히 ‘개점휴업’ 상태다.
시장 한쪽은 불에 탄 현장을 가리느라 초록색 가림막이 처져 있고, 그 앞으로 임시 천막을 설치해 장사를 이어가는 상인도 몇몇 있었다. 돗자리를 깔고 상추와 깻잎을 팔고 있는 구철민(50)씨는 “방화범 한 놈 때문에 한순간에 내 삶과 꿈이 날아갔다”며 “20년을 바친 장사를 그만두어야 하나 매일 고민하고 있다”고 했다.
화재로 피해를 입은 가게는 모두 70여 곳. 일부 집기만 탄 가게도 있고, 흔적도 없이 전소된 곳도 있다. 소방 당국은 당시 화재로 12억3200만원의 재산 피해가 난 것으로 추산했다. 대부분이 세를 얻어 장사하던 사람들이어서 화재보험 하나 들어놓지 못했다. 이미 가게 5곳은 장사를 접고 시장을 떠났다. 상인회장 박기현씨는 “울먹이며 시장을 떠났는데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보지도 못하겠다”며 “남은 사람들도 당장 어쩔 수 없어 가게 문을 열지만 사실 손님 끊긴 지 오래다”라고 했다.
채소 가게 주인 임옥수(60)씨는 “하루 50~60명씩 오던 손님이 요즘은 10명도 될까 말까 하다”며 “단골들도 화재로 시장이 문을 닫은 줄 아는지 통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IMF와 코로나도 이겨냈는데 지금이 더 어려운 것 같다. 다른 시장은 코로나가 끝나 북적북적한다던데 우리는 이러고 있으니…”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상인들은 올여름 장마가 제일 걱정이다. 지난 주말 내린 비에도 시장은 엉망이 됐다. 한 반찬 가게 직원은 “천장에서 시커먼 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가게마다 새는 비를 막느라 양동이를 받치고 있었다”고 했다. 또 다른 상인은 “장마철 폭우가 쏟아지면 혹시나 건물이 무너지지는 않을까 걱정”이라고 했다.
1971년 문을 연 현대시장은 인천에서 유명세 있는 전통시장이었다. 과거, 규모는 작지만 극장도 있고 내부에 동부시장, 알뜰시장, 동구상가, 원예상가 등 7개 소규모 시장이 있어 사람들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관광객들도 인천에 오면 빼놓지 않는 곳이었다. 2010년 현대식 아케이드 지붕을 얹고, 대형 마트처럼 배송센터도 만들었다. 이런 현대시장이 방화범 한 명 때문에 일순간 멈춰버린 것이다.
그래도 상인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30년 동안 반찬 가게를 운영 중인 박모(65)씨는 “화재 직후엔 상실감과 우울증으로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는데 요즘은 나와서 어떻게든 하루하루를 버틴다”고 했다. 시민 성금도 7억1600만원이 모였다. 지난달엔 피해 정도에 따라 약 300만원에서 많게는 4000만원까지 나눴다.
더디긴 하지만 복구 작업도 조금씩 진행되고 있다. 인천 동구청은 우선 수도와 전기 등을 최대한 빨리 복구해 상인들이 장사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초기엔 소방 당국의 화재 조사, 아케이드 지붕과 건물의 정밀 안전 진단 등을 하느라 2~3개월이 지나갔다. 이번 달 중으로 지붕을 해체하고 연말까지 복구 공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김찬진 동구청장은 “너무 마음이 아프다. 현대시장이 옛 모습을 되찾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지난달 16일 방화범(48)의 첫 재판이 열렸고, 그는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체포 당시 “술에 취해 기억도 나지 않는다”던 그는 법정에서 “어떤 처벌이든 달게 받겠다. 나가서 치료도 받고 주민들을 위해 열심히 살겠다”고 했다. 방화로 4번이나 실형을 선고받아 10년간 복역했던 그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