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든 다시 빨리 올라가 투숙객들을 대피시켜야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땀에 흠뻑 젖은 채 가쁜 호흡을 가다듬고 있는 남자. 고단함이 고스란히 묻어난 사진 한 장으로 시민들의 마음을 울린 주인공은 22년 차 베테랑 소방관 정형호(44) 소방위였다. 그는 사진이 찍히던 순간을 짐작해 보며 그때의 감정을 이렇게 털어놨다.
정 소방위의 사진은 지난 20일 불이 난 부산 해운대구 한 호텔에 묵었던 투숙객 김재필(57)씨가 촬영해 이튿날 언론에 공개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당시 7층에 머물다 소방관들의 도움으로 무사히 대피한 김씨는, 다급한 상황을 넘기고 맑은 공기를 쐬던 중 정 소방위의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소방관들의 침착하고 헌신적인 안내 덕분에 큰 부상자가 없었다”고 말했다.
사진 속 정 소방위는 무릎 꿇은 자세로 벽을 짚고 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온몸은 땀으로 젖었고 열기 탓인지 얼굴은 새빨개져 있었다. 정 소방위는 “임무 중 공기 잔량이 부족해 장비 교체를 위해 지상으로 잠시 내려와 숨을 고르던 찰나를 촬영하신 것 같다”며 “장비를 바꾸는 동안 방호복을 잠시 벗고 열을 빼내고 있었다. 어떻게든 다시 빨리 올라가 투숙객들을 대피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과호흡을 진정시키고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정 소방위는 이미 7층까지 두 번, 17층까지 한 번 계단을 오르내리며 인명 구조를 펼친 상황이었다.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건물 안 비상계단에는 연기가 가득 차 있었고 그 안에 뛰어든 정 소방위는 7층에서 내려오고 있던 투숙객 30~40명을 1층까지 안전하게 대피시켰다. 이후 다시 7층으로 올라간 그는 호흡곤란을 호소하는 투숙객을 만났고 보조 마스크를 씌워 건물 밖으로 구조했다. 그런 다음 비상계단에 남은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며 17층까지 올라가다 공기가 떨어져 1층으로 내려온 것이다.
그렇게 장비를 교체하고 숨을 가다듬은 그는 다시 객실 수색을 위해 11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15층까지 전 객실을 돌며 남아있던 투숙객을 구해냈다.
소방관들은 보통 20㎏에 육박하는 방화복과 공기호흡기 세트를 착용한 채 화재 현장에 뛰어든다. 특수 재질로 만든 옷이라 무릎이 굽혀지지 않아 움직임도 둔해진다.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정 소방위는 “이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고층 건물이 많은 지역 소방관들은 평소 계단 오르기 훈련을 특히 많이 한다”고 했다.
정 소방위는 언론 보도를 본 아내의 연락을 받고서야 사진이 찍힌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얼굴도 잘 안 보이는데 어떻게 알아봤냐’는 물음에 아내는 “나는 남편 뒤통수만 봐도 안다”며 “고생했다”는 말을 건넸다. 정 소방위에게 뭉클함과 보람을 안긴 한 마디였다. 이어 그는 이번 일로 자신이 조명받긴 했지만, 함께 인명 피해를 막은 동료들에게 더 감사하다는 인사를 덧붙였다.
한편 이번 화재는 지난 20일 오전 9시33분쯤 부산 해운대구 중동 해운대해수욕장 이벤트 광장 앞 해변로 건너편에 있는 한 호텔 지하에서 발생했다. 당시 투입된 소방관들의 신속한 구조로 투숙객 170여명은 무사히 대피했다. 이 중 30여명이 가볍게 연기를 마셔 인근 병원으로 옮겨지긴 했지만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