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7년 전북 부안의 A 교사는 제자 성추행 의혹으로 전북 교육청의 조사를 받았다. A 교사에게 꾸중 들은 학생들이 ‘부적절한 신체 접촉’을 주장했다가 경찰 수사가 시작하자 “과장”이라며 말을 바꿨다. 경찰은 사건을 내사 종결했다. 그런데도 전북 교육청은 A 교사가 학생 발바닥을 친 점 등을 문제 삼아 조사를 계속했다. 학생 인권 조례에 규정된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를 침해했다는 것이다. A 교사는 징계 권고 처분을 받자 억울함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했다.
작년 7월 부산에선 기간제 초등학교 교사가 아동 학대로 고소당한 뒤 같은 선택을 했다. 욕설한 학생에게 반성문을 쓰게 하고 복도에 세워 놓자 학생 부모가 ‘정서적 학대’라며 교사를 고소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교사에 대한 폭력과 고소가 이어지는데도 학교와 교육청, 경찰과 검찰 등 국가기관 누구도 교사를 보호하거나 돕지 않았다. ‘학생 인권’만 강조하며 오히려 교사를 궁지에 몰기까지 했다.
서울 초등학교 교사가 교내에서 극단 선택을 한 이후 일선 교사들의 ‘교권 보호’ 목소리가 전국에서 분출하고 있다. 서울의 한 교사는 “매 맞는 건 학생이 아니라 교사가 더 많은 세상이 됐는데도 학교와 교육청, 경찰 등 국가기관 누구도 교사 인권은 지켜주지 않고 교권 추락을 방치하고 있다”고 했다.
교사들은 “학교 관리자부터 문제”라고 말한다. 교권 침해가 발생하면 교사는 ‘교권 보호 위원회’ 개최와 징계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개최 권한을 가진 학교장은 “조용히 넘어가라”며 거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대전의 한 고교에선 학생이 화장하다가 벌점을 받자 소셜미디어에 교사를 모욕하는 글을 올렸다. 해당 교사가 반성문을 쓰라고 하자 학부모는 ‘아동 학대’로 고소하겠다고 협박했다. 교사가 교권 보호 위원회를 열어 달라고 했지만 학교 측은 ‘교내 봉사’로 사건을 봉합했다. 이 학교 교사는 “교권 침해를 당해도 보호 위원회가 열리는 건 10건 중 1건 정도”라며 “나머지 9건은 ‘학생 위해서’라며 학교가 덮는 것이 현실”이라고 했다.
교사가 학대 혐의 등으로 고소당하면 경찰과 검찰 수사로 고통받아야 한다. ‘아동 학대’라는 꼬리표가 붙으면 조사가 마무리되기까지 수개월이 걸린다. 그 사이 교육청도 별도 조사와 함께 징계 절차를 진행한다. 경찰 관계자는 “학교 안에는 CCTV가 거의 없기 때문에 진술에 의존할 때가 많다”면서 “교사가 조사를 받다가 ‘심적 압박이 심각하다’ ‘극단적 선택이 고민된다’고 말하는 경우도 봤다”고 말했다.
경기교사노조에 따르면, 2018~2022년 교사를 상대로 제기된 아동 학대 고소·고발 사건 중 53.9%가 불기소됐다. 교사 협박용 고소·고발이 많은데도 40% 이상 기소된 셈이다. 법정으로 불려 다니는 교사도 적지 않다. 한 법조인은 “교사를 상대로 한 아동 학대 고소·고발이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교사들은 ‘송사 스트레스’ 때문에 정신과 병원을 찾기도 한다.
교육청도 교사 편이 아니다. 경기도 한 고교의 학폭 담당 교사는 작년 5월 교복을 안 입은 학생에게 훈계를 했다가 “네가 뭔데 XX”라는 욕설과 함께 턱뼈에 금이 가는 폭행을 당했다. 이 교사는 교육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담당 장학사는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교사는 “학교장과 교육청의 무관심이 교사를 사지로 내몰고 있다”고 했다. 교사가 개인적으로 학생에 대한 법적 절차를 밟자 “죽여버리겠다”는 학생 측 협박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에 따르면, 교원 10명 중 6명은 학생의 욕설·수업 방해 등을 하루 한 번 이상 경험한다고 밝혔다. 이때 가장 어려운 점으로 ‘마땅한 제재 조치가 없다’(34.1%)를 꼽았다. 교총 관계자는 “학생이 휴식권을 내세우면 수업 시간에 잠을 자도 그냥 둬야 하고, 위험한 물건을 가져와도 사생활이라고 하면 빼앗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교사 인권 조례와 교권 보호 조례가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