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11시(현지 시각) 태국 수도 방콕의 번화가 ‘카오산로드’. 400m가량 되는 주(主)도로에 초록색 잎 모양 간판이 붙은 대마 판매점이 보였다. 이곳 도로에만 판매점이 8곳 있었고, 노점상까지 합하면 30여 곳이었다. 관광객들은 구매한 대마를 바로 피웠고, 길거리 곳곳에선 이들이 피우는 대마 냄새가 진동했다.
또 다른 번화가인 수라웡로드에는 한글로 ‘대마초 판매’라고 써 붙인 가게도 눈에 띄었다. 현지에서 만난 한 한국인 관광객은 “어딜 가나 대마 냄새가 나는 것 같다”고 했다.
작년 6월 태국 내 대마초 소비가 합법화된 이후 현지를 찾은 한국 관광객들은 대마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대마는 마약류 중 접하기가 쉬워 ‘입문용’으로 불린다. 대마를 접한 뒤 필로폰, 코카인 등의 마약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태국에서는 적극적인 호객 행위도 이뤄지고 있었다. 유명 관광지뿐 아니라, 지하철 인근에서도 대마 호객 행위는 흔했다. 길거리를 지나가자 상인들은 팔을 붙잡고 한국어로 “오빠, 대마. 대마”라고 했다.
한국인 관광객 최모(27)씨는 “대놓고 대마와 마약류가 여기저기 펼쳐져 있고, 별거 아니라는 듯 권유하기에 무서웠다”며 “호기심이 들기도 했지만 처벌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도망쳐 나왔다”고 했다. 최씨는 “대마 판매 가게에 한국인으로 보이는 40~50대 남성이 우르르 들어가는 것을 보기도 했다”며 “여행 전에 ‘마이 차이 깐차(대마 빼주세요)’를 외우고 왔는데, 대마가 너무 흔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복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판매점에서는 담배처럼 피울 수 있는 액상 대마는 물론 다양한 종류의 대마를 모아 놓은 ‘대마 키트’도 팔았다. 태국 돈 400바트(약 1만6000원)에서 1000바트(약 4만원)면 대마를 살 수 있다고 한다.
태국에서는 대마뿐 아니라 국내에서 ‘해피벌룬(아산화질소)’으로 알려진 환각 물질도 쉽게 접할 수 있다. 해피벌룬은 마약류는 아니지만 복용하면 웃음이 나는 등 마약과 유사한 효과를 내 ‘마약 풍선’으로도 불린다. 카오산로드에서 영업 중인 술집·식당 23곳 중 10곳은 ‘웃음 가스(Laughing Gas)’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호객 행위를 했다. 점원들은 “스마일, 스마일” “온리 100바트(약 4000원)”라고 했다. 관광객 김모(30)씨는 “래핑 가스가 해피벌룬인 줄 몰랐다”며 “주변 관광객들이 풍선 속에 든 가스를 흡입하고 있고, 마치 놀이용품인 것처럼 건네기에 하마터면 흡입을 할 뻔했다”고 했다.
대마는 태국에서는 합법이지만 한국에서는 불법이다. 해외여행을 하고 돌아온 한국인이 외국에서 마약을 한 것이 드러나면 처벌 대상이다. 태국관광청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태국을 찾은 한국인 관광객은 70만명이다.
경찰 관계자는 “수십만 명이 마약 친화적 환경에 노출된 셈”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혐의가 없는 상태에서 마약 검사를 할 수도 없고 사실상 무대책 상태”라고 했다. 이범진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는 “운 좋게 적발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단념시킬 수 있는 당국의 단호한 태도가 필요하다”며 “현실적으로 모든 여행객을 전수조사할 수는 없지만, 무작위 검사를 도입해 경각심을 줄 필요성도 있다”고 했다.
최근 국내 마약 사범은 증가 추세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올해 3월부터 7월까지 마약 사범 단속 결과 1만316명을 검거해 작년 대비(6301명) 63.7% 증가했다고 밝혔다. 일산동부경찰서는 지난 14일 필로폰·액상대마·케타민 등 700억원 규모의 마약류를 국내로 반입한 조직원 6명을 구속하고 투약자 27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은 베트남 등 해외에서 22kg 분량의 마약을 반입해 유통한 혐의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