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투약 혐의로 기소된 고(故) 전두환 전 대통령의 손자 전우원(27)씨가 ‘신종 마약’ 투약을 자백했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이를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못한 것으로 27일 알려졌다. 검찰은 최근 전씨를 MDMA(메틸렌디옥시메탐페타민), LSD(리서직산디에틸아마이드), 케타민, 대마 등 4종 마약을 투약한 혐의로 기소했다. 전씨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이 외에도 DMT, 2C-E, 4-ACO-DALT 등 신종 마약 투약도 자백했다. 하지만 미국발 신종 마약을 감정하는 물질 도입에만 6개월이 걸려 이와 같은 신종 마약을 검출할 수 없었다고 한다. 검찰은 증명된 마약 투약 혐의로만 전씨를 기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정부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지 1년, 국과수에서는 이와 같은 신종 마약과의 전쟁이 한창이었다. 국과수에 의뢰된 마약 감정 건수는 지난 2018년 4만3827건에서 작년 8만9033건이 돼 2배로 늘었다. 작년 전국 국과수의 마약 감정 연구관은 19명으로, 연구관 한 명당 4686건을 감정하고 있었다. 문제는 신종 마약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국과수에 따르면, 지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서울연구소에 감정 의뢰된 압수품 중 신종 마약인 ‘합성 대마’는 757배 증가했다. 최근 유행 중인 케타민(33배) 역시 급증했다. 같은 기간 전통적 마약인 대마는 6배가량 늘었다. 새롭게 발견되는 신종 마약도 늘고 있다. 국과수에 따르면 국내에서 최초 검출된 신종 마약은 지난 2020년 3건에서 작년 7건으로 배 이상 늘었다. 올해 상반기에만 5종의 신종 마약이 나타났다.
이달 중순 서울 양천구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서울과학수사연구소의 ‘마약실’ 입구에는 ‘신종 마약과의 전쟁’이라는 문구가 붉은색 글씨로 붙어 있었다. 마약실은 마약 투약 의심자의 소변·모발을 감정하는 곳이다. 강모(35) 연구사는 시험관 100여 개 앞에서 머리카락을 감정하고 있었다. 강 연구사는 흰 종이 봉투에 담긴 머리카락을 꺼내 일정 길이로 자른 뒤 핀셋으로 하나씩 집어 시험관에 나눠 담았다. 이렇게 7시간에 걸쳐 30여 명의 머리카락에서 마약 성분을 채취했다. 강 연구사는 “이 정도 작업 시간이면 상당히 무난한 편”이라며 “신종 마약이 몰려서 들어오는 날은 시험 시간이 4~5배 늘어난다”고 했다.
신종 마약으로 인해 마약 검출 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날 마약실에서는 김지현(47) 연구관이 50cc가량의 소변이 담긴 노란 통 30여 개를 분석하고 있었다. 소변은 마약 감정에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약물 투약 후 20분이 지나면 소변으로 배출되기 시작하고, 일반적으로 나흘~닷새 동안 소변에 많은 양의 마약류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김 연구관은 “필로폰, 대마, 코카인 등 전통 마약 6종을 예비 시험을 통해 감정하는 데는 2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며 “하지만 신종 마약은 일일이 정밀 시험을 해야 해 한 종류를 감정하는 데만 3~4일 정도 소요된다”고 했다.
지난달 서울 용산에서 현직 경찰관 등 최소 22명이 참석한 ‘마약 파티’가 열렸는데, ‘천사의 가루’로 불리는 펜사이클리딘(PCP) 유사 성분이 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약은 국내에선 처벌 통계도 없는 신종 마약이었다. 전통적 마약 검출이 경찰에 통보되는 데는 1~2일이 소요되지만, 신종 마약이었던 탓에 통보가 늦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마약을 투약하는 수법도 다양해지고 있다. 서울연구소 ‘마약기기실’에서는 연구관 두 명이 파란색 보호 장갑을 끼고 흰 바구니에 든 마약 압수품을 살피고 있었다. 서울시내 한 경찰서가 ‘케타민, 엑스터시, 대마’ 검출 여부를 분석해 달라고 보냈는데, 투약 수법이 기존과 달랐다. 박미정(54) 독성화학과장은 “전자 담배 액상에 마약을 섞어서 흡연하는 신종 마약 투약 수법”이라며 “요즘은 필로폰도 주사기 대신 물담배나 연기로 태워 마시는 등 마약 투약 수법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고 했다. 박 과장은 “신종 마약은 한때 유행하다 단속을 피해 사라지고, 다시 새롭게 등장하는 주기가 굉장히 빨라서 속도전이 중요하다”며 “신종 마약을 감정하기 위한 물질이 우리나라에 도입되기까지 최소 6개월 이상 걸리는데, 그새 다른 신종 마약이 나타난다”고 했다.
국과수 관계자는 “신종 마약은 해외 논문을 참고하면서 분석법을 일일이 만들고 익혀야 한다”며 “새로운 마약이 매번 쏟아지는 탓에 실험실은 늘 전쟁터 같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