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서구에 사는 A(57)씨는 금요일이었던 지난달 11일 자녀를 사칭한 스미싱(문자 사기) 문자의 인터넷 링크를 클릭한 뒤 통장에서 8680만원이 빠져나갔다. A씨는 곧바로 경찰서를 찾았지만, 경찰은 “금융기관의 증빙 서류를 가져와 정식 신고하기 전까진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했다고 한다. A씨는 경찰에서 요구하는 피해 증빙 자료를 제출하기 위해 은행, 통신사 등에 직접 방문했고 주말이 껴 있어 신고 접수에만 3일이 걸렸다. 그동안 A씨 명의를 도용한 가상 계좌 1개가 개설됐고, 휴대전화 3개도 개통됐다. A씨는 “혼비백산 상태로 경찰서에 갔지만 잘 알아듣지 못하는 용어만 듣고 발길을 돌렸다”며 “절차를 진행하는 사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피해는 누가 구제해줄 거냐”고 했다.

전화·문자 등을 이용한 각종 ‘피싱’ 범죄 피해가 늘어나고 있지만, 그 구제를 위한 경찰 신고에만 2~3일이 소요되는 것으로 27일 나타났다. 이와 같은 문제는 수차례 지적돼 왔지만, 경찰은 “권한이 없다”는 입장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사회동향통계’에 따르면, 보이스피싱이 처음 발생한 2006년부터 2021년까지 누적 피해 금액은 3조8681억원이다. 특히 코로나 기간을 지나면서 스미싱이 급격히 증가했다. 2019년 2963건이었던 스미싱은 2021년 1만7841건으로 약 6배 늘었다.

정부는 경찰에 신고하면 계좌 지급 정지가 된다고 하고 있지만, 일부 저축은행은 전화로 지급정지 신청이 불가능해 직접 방문해야 한다. 또 지급정지 이후에는 인터넷·모바일 뱅킹이 가로막혀 피해 내역 자료를 얻기 위해 은행을 직접 방문해야 한다. 은행이 영업하지 않는 주말·공휴일이 겹치면 범죄 증빙 자료 수집에만 수일이 소요되는 셈이다. 스마트폰, 인터넷 사용이 미숙한 장·노년층의 피해는 더욱 심각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보이스피싱 피해자 절반이 50대 이상이다.

신고가 접수돼도 수사에는 수개월이 걸린다. 피싱범들은 돈세탁을 위해 피해 금액을 여러 계좌로 이체하는데 이 계좌들을 수사하기 위해 각각의 계좌에 대한 법원의 압수수색 영장 발부가 필요하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영장이 발부돼 수사에 착수해도 수사관이 영장 신청한 계좌만 수사할 수 있으며 새롭게 발견되는 돈세탁 계좌에 대해서는 또다시 증거와 함께 영장을 신청해 약 일주일을 기다려 영장을 발급받아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피싱 범죄에 대응이 늦다는 지적이 계속되자 지난 26일 ‘전기통신 금융사기 통합신고 대응센터’를 개소했다고 밝혔다. 통합 센터를 통해 피싱 피해자 신고를 일원화하고, 피해 대응을 신속하게 하겠다는 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