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무장 단체 하마스의 공격으로 이스라엘에 고립됐던 국민 163명이 14일 밤 우리 공군 공중급유 수송기 ‘시그너스(KC-330)’를 이용해 귀국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 벤구리온 공항을 이륙해 이날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 수송기엔 우리 국민뿐 아니라 일본인 51명과 싱가포르인 6명도 탑승했다. 정부 관계자는 “탑승을 희망하는 한국인을 다 태우고도 수송기의 자리가 비어 있어서 일본인 등을 태웠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자국민이 한국 수송기로 이스라엘에서 나온 것에 대해 “한국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는 반응이 나왔다.
외교부와 국방부는 이번 수송 작전으로 단기 여행객 82명과 장기 체류자 81명이 대피했다고 밝혔다. 당초 예상보다 적은 인원이어서, 14일(현지 시각) 출발 직전까지 230석 규모 군 수송기 좌석을 다 채우지 못해 60여 석이 남았다고 한다. 이를 일본인과 싱가포르인이 채우게 된 것이다. 이번 이송 작전이 끝난 14일 이후 이스라엘에 남아 있는 한국인 단기 여행객은 10여 명, 장기 체류자는 440여 명이다.
일부 교민은 “정부가 제공하는 무료 수송기라는 사실을 몰라 탑승 여부를 고민하다가 탑승하지 않은 사람들이 꽤 있었다”고 했다. 정부가 이스라엘에 비행편을 급파한다는 사실은 지난 12일(현지 시각) 공지됐다. 한 교민은 “정부가 메신저와 전화 등으로 ‘우리 항공기를 준비 중’이라고 공지했지만 ‘정부의 무료 수송기’라고 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항공료 부담 때문에, 귀국이 당장 급하지 않은 장기 체류자 중에 지레 탑승하지 않기로 한 이가 많았다는 것이다.
정부는 당시 탑승 신청자와 항공료 문의를 한 사람에게는 무료 항공편이라고 알려줬다고 한다. ‘운임 무료’를 처음부터 공지하면 생길 혼란을 우려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한 탑승자는 “신청자가 많으면 노인과 여성, 어린이 등 노약자부터 태우겠다는 공지가 있었다”며 “무료라는 걸 알게 된 이들도 경쟁이 치열해질까 봐 다른 장기 체류자에게 알리지는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자국민 수송이 우선이지만 수송기 내 자리 여유가 있어 일본과 싱가포르인을 태운 것”이라며 “지난 4월 수단 내전 당시 우리 교민들이 아랍에미리트(UAE)의 도움을 받은 것처럼 긴박한 상황이 생기면 국제사회가 협력하는 것은 일반적이고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지 체류 국민 중 긴급 대피를 원하는 요청이 많다면 수송기를 또 보내 국민을 데리고 올 것”이라며 “국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했다. 우리 정부는 이번에 투입된 공중급유 수송기를 지난 4월 수단 내전 때도 투입했다. 2021년 8월에는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이 탈레반에 함락됐을 당시 ‘특별 기여자’와 그 가족을 공중급유 수송기로 데려왔다.
일본에서는 자국민 대피를 도운 한국에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은 “(한국 정부가) 인도적인 배려에서 (일본인) 대피에 협력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교도통신은 “한국은 지난 4월에도 군사 충돌이 발생했던 아프리카 수단에서 자국민을 귀국시킬 때 일본인 대피에 협력했다”고 했다. 이 뉴스는 일본 최대 포털 사이트인 야후 재팬에서 조회 수 상위권을 차지했다. 일본 네티즌들은 “솔직히 한국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인명과 직결된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이번 한국 정부의 대응은 훌륭했다” “이런 일이 늘어나면 양국 관계도 금방 좋아진다”고 했다. 가미카와 요코 일본 외무상은 한국 정부의 일본인 이송에 대해 박진 외교부 장관에게 전화로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일본에서는 유사시 대응이 늦은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에 대한 비판도 나왔다. “기시다 총리는 늘 유사시 판단이 한 박자씩 느리다” “타국 대응보다 느린 건 자국 수장으로서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들이다. 일본 정부는 우리 정부보다 하루 늦은 14일 밤 이스라엘 텔아비브 공항에 전세기를 급파했다. 이 전세기에는 일본인 8명이 탑승했다.